초등학교 4학년 때. 엄마들의 치맛바람이 거셌던지라 아이를 반장 시키려는 부모들의 열성은 만만치 않다. 아이들을 불러다가 파티를 열고 등하교길에 아이 옆에서 친구들의 눈도장 찍기가 일쑤.
운동장에서 공 따라 뛰어다니기만 했던 나야 어디 반장이야 언감생심이었지만 몇몇 친구들은 「공직생활」에 막연한 동경심을 가질 만큼 세속의 때(?)가 묻어있었다.
마침내 결전의 그날, 친구들은 교탁 위로 올라서서 우렁찬 변(辯)을 쏟았다. 『내가 반장이 된다면…』으로 시작되는 친구들의 공약을 듣고 종이쪽지에 친한 친구 이름을 적어 투표함에 집어넣었다. 하나씩 투표용지가 개봉되고 반장이 선출되면 힘찬 박수와 함께 또 한번 당선의 변이 이어진다.
그 날 후보 엄마들도 투표장에 참석했다. 책상 뒤쪽에 죽 서서 투표과정을 바라보는 엄마들의 얼굴은 흐뭇한 미소가 시종 흐른다.
「유권자」들에게 과자를 사주는 등 약간의 부정(?)과 과열된 분위기가 조금은 있지만 내 아이와 그 친구들이 벌이는 일대 파란의 선거 과정을 지켜본 엄마들은 그것을 통해 아이들이 성숙하게 자라난다는 것을 잘 안다.
요즘 어디서나 지하철역을 지나다 큰 소리가 나면 영락없이 선거요원들이 진치고 있다. 출퇴근 시간이면 거의 고성방가 수준이다. 거기에 생전 안면도 없는 입후보자가 환한 얼굴로 악수를 청해올 때면 곤혹스럽기가 이를데 없다.
하지만 어느 누구 하나 이들의 구호에 애정을 갖는 이가 없다는데서 비극이 시작된다. 이들이 「공공요원」으로 「대민봉사」에 나설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적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뿌리깊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반장이 우리를 위해서 무엇인가를 해줄 것이라고 믿는 아이들 선거의 반의 반만이라도 우리들의 선거 행위가 의미를 가질 수 있다면 좋겠다는 나의 소박한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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