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의학회에서는 지난달 31일 가톨릭의과학연구원에서 150여명의 회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한국의료윤리심의기구협의회를 공식으로 출범시켰다. 작년 5월 대한의사협회가 의료윤리지침을 제정하면서부터 의료윤리에 대한 사회의 관심이 고조되기 시작하였고, 이와 함께 우리는 의사윤리지침의 세부 사항에 대한 사회의 비판이 매우 거세었던 것을 기억한다. 지침의 내용 대부분이 의료현장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에 대한 의사들의 행동에 관한 것들이었지만 그러한 지침들을 제정하는 데 있어서 사회 각층의 다양한 소리를 반영하지 못했고, 따라서 사회적인 공감대 형성을 위한 노력은 전혀 없었다는 지적이 매우 많았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사회 일각에서는 그러한 지침들이 의사들의 집단이기주의의 한 단면이라는 신랄한 비판도 없지 않았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의료 현장에서 일어나는 인간의 건강과 생명에 관련되는 수많은 문제들은 이제 단순히 의료 분야에만 맡겨둘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비록 의학 분야가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분야들 중 가장 가까이 있는 분야라고는 하지만 인간의 생명은 단순히 의학 분야뿐만 아니라 철학, 사회학, 물리학, 생물학, 생태학, 법학, 신학 심지어는 정치 분야까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인식이 이미 널리 확장되어 있다는 것은 이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되어버렸다. 곧 인간 생명의 영역은 단순히 어느 한 분야에만 맡겨둘 영역은 아니라는 것이다. 예컨대 낙태를 논할 때 낙태가 가능한가, 그렇다면 언제 가능한가 등의 문제가 단순히 의학 분야 단독으로 결정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이다.
그런데 작년에 제정, 공포된 의사윤리지침은 낙태, 안락사, 연명치료, 인공출산, 생명공학 등 인간 생명과 관련된 여러 문제에 대해 「우리는 이렇게 하겠다」라는 식의 지침을 내어놓은 것이고, 이 지침이 지난 1년간 우리 사회 각 분야에 수많은 비판과 토론 거리를 제공했던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대한의학회가 의사, 의학자, 법학자, 변호사, 종교인, 철학자, 윤리학자, 언론인 등으로 구성된 의료윤리심의기구협의회를 발족시킨 것은 적어도 인간 생명과 관련된 윤리 문제는 단순히 의사들에게만 맡겨진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고, 보다 폭넓게 인간 생명 문제에 대해 우리 사회 전체가 관심을 가지도록 초대한 것이라고 여겨진다. 이 협의회 창립의 취지문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인간 생명문제와 관련된 규범 정립을 위해서는 사회 각계각층의 의견을 제대로 수용해야 할 것이며, 따라서 앞으로의 노력은 지금까지보다는 인간 생명과 관련한 기본적인 내용에 더욱 충실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만에 하나라도 이 협의회가 지금까지 논란이 되고 있는 여러 문제들에 대해 의료윤리심의기구협의회라는 이름의 보호장치를 가짐으로써 지금까지의 거센 반대를 막아보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출범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이에 대한 경계를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명실공히 인간의 생명을 그 누구보다도 더 귀하게 여겨 인술을 펼치는 의사들에게 더 큰 자부심을 제공하고 그들 자신이 진정한 의미의 생명의 봉사자라는 자의식을 훼손시키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 협의회의 시작과 앞으로의 활동은 매우 중요하고, 이런 의미에서 또한 큰 기대를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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