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당 감실 옆에 꽂혀있는 붉은 장미꽃 한 다발을 보면서 가시에 찔린 예수님의 붉은 심장과 붉은 악마를 동시에 떠올렸다.
장미 송이마다 넘치는 정열적인 이 색깔은 요즘 우리들이 선호하는 색이 되었고 온통 우리 나라를 술렁이게 하는 희망과 사랑, 일치의 색이 되었다.
나는 오래 전부터 이 화끈한 색을 좋아한다. 그래서 대만이나 러시아를 방문했을 때 곳곳에 보이던 붉은 색이 나에게는 낯설지 않았다.
수도원에 입회하기 전에 입던 나의 옷도 대부분 붉은 색 계통이었다. 그리고 나의 성격도 다른 것과 어울려 자신의 특성을 드러내지 않는 연두나 노랑이 아니라 열정적이고, 분명하며 단순하지만 선명하여 그 안에 깊은 맛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외양으로 드러내 보이는 향기와 색이 너무 강해서 가끔 오해를 사고 이해를 받지 못하는 때도 있다.
그러나 나는 한번도 이 색을 포기하려고 생각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오히려 내가 생긴 그대로를 받아들이면서 잘 갈고 다듬어 참된 아름다움을 지닌 붉은 색으로 살 것이다.
붉은 정열의 색은 또 한편으로 희생을 전제로 하는 것 같다.
온 몸에 비지땀을 흘리며 공을 넣기 위해 뛰고 있던 선수들을 바라보면서 그들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엄청난 기쁨은 모두 자신을 갈고 다듬은 피나는 훈련과 그들을 뒤에서 밀어주고 희생을 바쳐준 부모님들과 감독의 노고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면서도 붉은 악마라는 아이러니컬한 이름으로 온 국민이 일치 단결하여 외치던 「대한민국」이라는 그 함성은 바로 오늘날 우리 모두가 필요로 하고 만들어 내고자하는 「새로운 역사」라는 사실도 깨달았다.
역사는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지 그냥 되어지는 것이 아닌 것 같다. 그리고 역사는 자연스럽게 아무런 강요도 없이 너와 나의 가슴에서 솟아나는 사랑이라는 이름의 글자인 것을 알고 나는 너무나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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