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의학계에서는 회복불가능한 임종환자에 대한 연명치료를 계속하는 것이 윤리적인지에 대한 토론이 매우 활발하다. 여기서 임종환자란 이미 자연적인 생명이 다한 상태의 환자로서 심폐소생술이나 인공호흡기 등의 특수한 치료방법을 통해 어느 정도의 임종 시기를 늦출 수 있는 환자를 의미한다.
이 문제가 우리 사회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임종환자의 치료 중단이 현행법으로는 형법상 살인죄의 구성요건에 해당되는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발표된 의사윤리지침 30조 3항이 비록 환자나 그 대리인이 환자에 대하여 의학적으로 무익하거나 무용한 치료를 요구하더라도 의사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예컨대 임종환자의 호흡이 멎었을 때 심폐소생술을 시행하지 않을 경우 의사는 자신이 할 수 있었던 행위를 하지 않음으로써 환자를 죽게 내버려두었고, 따라서 법조항상 살인죄 항목에 저촉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현실인 반면에 의사들은 이러한 행위가 전혀 무의미한 행위일 뿐 아니라 오히려 환자에게 고통만 더 가중시키는 행위이기 때문에 당연히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문제가 우리 사회의 주목을 받는 배경에는 안락사 허용 찬반의 문제가 함께 자리잡고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곧 사회 일부에서는 임종자에 대한 연명치료의 중지가 소극적 안락사이기 때문에 결코 허용되어서는 안된다는 주장이 이 문제에 대한 매우 활발한 토론을 불러온 이유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한 가톨릭 교회의 생각은 치료행위를 지속시키느냐 거부하느냐의 문제보다는 더 근본적으로 우리가 어떻게 죽음을 받아들이는가의 문제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고 하겠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회피할 수 없는 인간 실존이라고 한다면 그 죽음 또한 내 삶의 한 부분이고 따라서 죽음 또한 내 것 일 수밖에 없다. 이렇게 내 실존으로서의 죽음이 나로서는 도저히 피할 수 없이 결정적으로 다가왔을 때 이 죽음에 대한 내 자신의 자세는 그것을 애써 외면하고 피하기보다는 책임감있는 의식과 자유를 가지고 그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죽음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올바른 태도이다.
바로 이러한 죽음 이해에 기초하여 가톨릭 교회는 환자의 조건으로 보아 이미 필요하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특수한 치료행위를 그만두기로 환자가 결정하였다면 이를 가리켜 소극적 안락사에 대한 결정이라고 해서는 안된다고 가르치는 것이다. 그 환자에게는 죽음의 시간을 조금 더 연장시키는 치료도 중요하겠지만 올바른 의식으로써 다가오는 죽음을 준비하고 생을 잘 마무리 할 수 있는 주위의 도움이 더 필요하기 때문이다. 물론 죽음이 임박한 환자라고 하더라도 간호행위나 보편적인 투약 등의 통상적인 치료행위까지도 거부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1980년, 「안락사에 관한 선언」 참조).
이렇게 볼 때, 임종환자나 말기환자에게 있어서 치료를 받거나 거부하는 행위의 주체는 언제나 환자 자신에게 있다는 것이 우리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이다. 연명치료에 있어서도 의사가 그 결정의 주체가 되기보다는 환자가 그 중심에 있어야 한다. 환자가 연명치료를 거부했을 때 의사는 양심 안에서 그 환자의 의견을 존중할 수 있고 그것 때문에 의사가 환자를 끝까지 살리지 못했다고 자책할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연명치료의 중단」보다는 오히려 「연명치료의 거부」라는 말이 더 적합한 말이 될 것이고, 이는 언제나 치료의 중심은 환자 자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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