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돈을 잃으면 조금 잃는 것이고, 명예를 잃으면 많이 잃는 것이지만, 건강을 잃으면 모두를 잃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그만큼 건강이나 생명가치가 인간의 어떤 가치보다 우선하는 일이라는 것을 강조한 말이다. 따라서 개인차원에서나 국가 사회차원에서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건강을 보호하고 유지 증진시키는 일은 다른 어떤 일보다 중요한 일이라고 할 수가 있다.
사람의 건강을 보호하고 이를 유지 증진시키는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질병에 걸리지 않도록 미리 예방하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일단 발생된 질병에 대해 이를 적절히 치료해 줌으로써 원래의 건강을 되찾게 하는 일이다.
이상적으로 말하자면, 이 두 가지는 항상 서로 보완적으로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그것은 모든 질병이 다 예방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모든 병이 다 치료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동안의 인류 역사를 보면 이 둘은 결코 서로 보완적으로 작용을 해 온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 둘은 시대에 따라 서로 힘 겨루기를 해 온 상태라고 할 수가 있다.
항생제 같은 치료약이나 다른 마땅한 수술방법이 발달하지 못했던 예전에는 사람들의 건강문제는 거의 전적으로 질병을 예방하는 예방의학의 몫이었다. 생활환경을 깨끗이 함으로써 전염병의 발생을 억제하고 환자가 발생하면 적절히 격리해서 그 전파를 막는 소위 환경위생이나 방역 활동 같은 예방 의학적 보건활동 말고는 달리 질병에 대처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1800년대 말에 현미경을 이용해서 병을 일으키는 세균이 발견되고 곧 이어 이를 죽이는 항생제가 개발되고 나서는 예방보다 치료 쪽이 더 큰 힘을 발휘하게 되었다. 그 동안 수많은 인명을 앗아간 세균성 질병들이 항생제 개발로 거의 완전히 무력화되었으며 이 때문에 의학은 가히 제왕적 과학의 위치에까지 이르게 되었고 의사들은 그만큼 사회적으로 큰 대접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이런 치료적 패러다임의 의학은 지금까지도 계속 되고 있다. 도시마다 대형병원들이 줄지어 들어서고 의사들은 여전히 좋은 직업인으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러나 조금만 관심 있게 살펴보면 지금의 치료적 접근에 의한 건강관리방식에는 적잖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것은 지금 사람들의 질병 대부분을 차지하는 고혈압이나 당뇨병, 그리고 만성 간 질환이나 각종 암들은 일단 발생이 되면 쉽게 치료가 되지 않고 거의 평생 치료를 받아야 하거나 조기에 사망을 하게 되는 질병들이기 때문이다.
두말할 나위도 없이 이런 질병들에 대해서는 치료보다 예방에 더 노력을 해야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사람들은 물론 국가나 의료계조차도 예방보다는 온통 치료에만 매달려 있고 이러는 동안 의료수요와 여기 지불되는 의료비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기만 하는 것이다.
국민각자가 내는 의료보험료가 크게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 나라 의료보험 공단이 2조원도 넘는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는 사실이 바로 이런 현실을 잘 말해주고 있다. 그만큼 치료비에 돈이 많이 들어가고 있다는 증거다. 이제 우리가 해야할 일은 질병을 예방하고 건강을 증진시키는 일에 보다 많은 노력을 함으로써 의료수요를 줄여야 한다. 그러자면 적어도, 저런 만성질환 발생과 관련이 깊은 것으로 밝혀진 흡연이나 지나친 음주, 그리고 비만이나 운동부족 같은 잘못된 생활행동들에 대해 국민 각자는 스스로 이를 고치도록 노력해야하겠지만 정부나 사회단체들 또한 이런 행동들에 대한 예방적 조치를 제도화하고 실천하는 예방보건 활동에 적극 힘써야 한다.
사람들의 건강문제와 관련해서 전통적으로 가톨릭 교회는 주로 치료적인 의료활동을 통해 개인이나 사회에 기여를 해 왔다. 그것은 교회의료가 기본적으로 예수님의 치료기적을 본받아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치료해 온 오랜 전통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교회도 보건의료에 대한 사회적 역할 수행의 패러다임을 바꾸어가야 한다. 질병치료에 대한 노력만큼 질병예방과 건강증진 활동에도 관심을 가져야 하며 무엇보다 교회 구성원들 스스로 모범을 보이도록 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최근 로마교황청이 바티칸 시내 건물 전체를 금연구역으로 선포했다는 뉴스는 여간 다행스럽고 자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번 조치가 반드시 여기 드나드는 사람들의 건강문제만을 생각해서 취해진 것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이 일이 사람들의 흡연관련 질병예방과 건강 증진에 미칠 긍정적 효과는 결코 과소 평가 될 일이 아니다. 이를 계기로, 우리 나라에서도 가톨릭이 술과 담배에 한없이 너그럽다는 사회적 인식을 하루빨리 불식시켰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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