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생일 잔치에 가기 위해 길을 나섰던 천진한 여중생 2명이 미 육군 병사 2명이 몰던 장갑차에 치여 사망한 것이 이미 두달 전인 6월 13일이다. 하지만 아직도 이들의 허망한 죽음에 대한 명확한 진실 규명과 책임이 완전히 가려지지 않았고 다시는 이런 사건이 발생하지 않도록 할 수 있는 아무런 조치도 취해지지 않고 있다.
주한 미군이 우리나라에 주둔하기 시작한 이래 끊임없이 발생해온 주한 미군의 범죄 행위, 그리고 그에 대한 올바른 처리가 이뤄지지 못한데 대한 우리 나라 국민들의 분노에 가까운 감정은 이제 극한에 달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범국민적인 규탄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등 39개 천주교 단체들로 구성된 천주교대책위원회도 7월말 이 사건을 야기한 미군 병사들이 한국 법정에서 재판을 받을 것과 한미행정협정의 개정을 강력하게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일선 본당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서울대교구 경기북부지구는 의정부시 녹양동성당에서 400여명의 신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시국미사를 봉헌하고 책임자 처벌과 불평등한 SOFA 협정의 전면 개정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여전히 미군측은 재판권 포기 의사를 밝히지 않고 있으며 지금까지 그들의 자세를 통해 볼 때 앞으로도 재판권을 쉽게 포기하지는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사실 이는 그렇게 놀랄 일은 아니다. 1967년 SOFA 발효 이후 20년 동안 총 3만9452건, 하루 평균 5건꼴로 미군 범죄가 발생했으나 한국이 재판권을 행사한 것은 불과 234건(0.6%)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는 한 마디로 불평등한 SOFA 규정에서 비롯된 것이며 그 개정 요구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최근 일부 개정됐다고 해도 핵심적인 독소 조항은 여전히 남아있다.
한국교회는 주교회의 차원에서 이미 지난 2000년과 2001년 두 차례에 걸쳐 미국 주교회의에 SOFA 개정을 촉구하는 문건을 보낸 바 있다. 한국 주교회의 의장 박정일주교는 미국 주교회의 의장에게 보낸 이 문건에서 『SOFA는 한국과 미국간의 오랜 갈등과 마찰의 원인』이 돼 왔다고 지적하고 올바른 개정을 촉구했다. 또 2차로 보낸 문건에서는 일부 개정됐다해도 가장 문제시되는 독소 조항들이 전혀 개정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번 여중생 압사 사건의 처리 과정을 지켜보는 우리 국민들의 가슴 속에 차 있는 분노의 감정을 미국과 한국 정부는 더 이상 소홀히 여겨서는 안된다.
반드시 이번 사건을 야기한 진상과 원인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엄중 처벌해야 할 것이며 정의로운 사태 해결을 가로막는 불공평한 협정 조항은 앞으로 전면 개정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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