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에 여자중학교가 있다. 여중생들은 버스건 길거리건 가림없이 참새처럼 조잘거리거나 굴러가듯 웃는다. 건드리기만해도 폭발하는 웃음의 지뢰, 웃음보를 지녔다.
버스에서 술취한 아저씨가 위태롭게 앉아 진동따라 흔들리는, 어른들이 보기엔 도무지 웃을 이유가 없는 광경에도 까르르 까르르 웃음을 터뜨린다. 그 웃음이 앞으로 옆으로 눈짓과 몸짓으로 참 빠르고도 강력하게 전이되어 또래들은 허리를 잡고 어른들까지 웃음을 머금는다.
요즘 솜털 보송보송한 여중생들을 보면 곰곰 살펴보게 된다.
심미선과 신효순 두 소녀도 저렇게 싱그러웠겠지 저렇게 풋풋했겠지 예뻤겠지 가슴에 통증이 일기 때문이다. 틀림없이 두 아이도 참새처럼 조잘거리기를 좋아하고 건드리기만해도 웃음보가 터지는 감수성으로 시시때때로 깔깔거렸을 것이다.
그런데 미군 장갑차라니! 대체 얼마나 놀라고 무시무시했을까.
효순이와 미선이의 억울하고 굴욕적인 희생은 참으로 그 뿌리가 깊고도 깊다. 매향리와 광주항쟁의 빛고을과 노근리를 비롯한 동란 중의 곳곳의 양민학살과 동란 이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기도 전인 미군정 상황에서의 제주 4.3항쟁까지 거슬러 올라가야한다. 얼마나 많은 무고한 양민들이 이유를 모른 체 다만 약소국의 백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희생되어야 했는지.
우방의, 친구의 얼굴 뒤에 또 하나의 얼굴이 숨어있음을 더 이상 모른체 해서는 안된다.
월드컵 4강진출의 신화는 이러한 수를 헤아리기 어려운 숱한 효순이들 미선이들의 생명 위에 이루어진 것임을, 여중생들의 웃음소리가 더욱 낭랑해질수 있도록 이제야말로 마음을 모아야 한다. 효순이와 미선이 그리고 수 많은 무고한 영혼들이 웃을수 있도록. 다시 미선이 효순이의 비극이 없도록.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