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 8월 15일 광복절 남북 공동행사에 북한에서 온 화가 김동환씨가 남측 대표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즉흥적으로 한반도의 모습을 그린 적이 있다. 나는 신문에 난 그 그림을 보는 순간 말할 수 없는 감동과 흥분을 느꼈다. 그래! 이것이다. 우리 한반도의 지리적 형세가 지니는 의미가 처음으로 마음에 와 닿는 그림이었기 때문이다. 그림 옆에는 「조국은 하나의 몸」이라고 씌어 있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선생님들이 한반도의 형세는 호랑이를 닮았다고 했다. 어떤 선생님은 토끼를 닮았다고도 했다. 포항쪽이 그 꼬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쳐다보아도 토끼를 닮은 것 같지는 않았고 더 더구나 호랑이는 아니었다. 그 이후로도 여러 번 애국심을 발휘해 백두산 호랑이의 모습을 찾아 보려고 했지만 지금까지 한번도가 호랑이를 닮았다는 말에는 수긍을 할 수가 없었다.
김동환 화백이 그린 그림은 「춤추는 여인」이었다. 한복을 차려 입고 춤추다 그대로 멈춘 여인의 모습이 한반도에 그대로 들어 맞았다. 조금도 어색하거나 과장된 표현 없이 그려진 여인의 모습에서 지금까지 찾지 못했던 한반도의 형세를 발견한 것이다.
높이 들어 허공을 휘저었을 스냅의 여운이 담긴 여인의 왼손은 두만강 유역을 그렸고 오른 손은 균형을 맞추기 위해 아래로 비틀어 옷 소매를 흘리며 압록강의 긴 줄기를 그려내었다.
그 가운데에 웃음을 띤 여인의 머리가 우뚝 솟은 백두산의 정기를 품은 듯 꿋꿋한 자세를 유지해 주고 있다. 치마 속에 감추어진 왼쪽 다리는 까치 발을 딛고서 날아갈 듯한 동작을 했던지 아니면 흥에 겨워 발을 조금 들고 서 있는 동작인 듯 날렵한 모습이다.
그로 인해 개마고원에서부터 시작되는 백두 대간은 가슴을 따라 허벅지를 통해 길다란 옷고름과 치맛자락이 주름진 그대로 내리 달려 남해에 이른다. 버선을 신은 오른발이 치마 끝으로 뾰족이 드러나 댓돌을 딛고 서 있는 모습으로는 고흥반도와 제주도를 그려냈다. 이렇게 보니 한반도의 형세가 제대로 잡힌 모습이다. 누가 보아도 「하나의 몸」으로 이루어진 조국의 형세를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40여 년을 살아 오면서 공감이 가지 않던 호랑이 형세론을 지리 선생님들은 더 이상 강요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기상은 광활한 북쪽으로 머리를 들고 현실의 두 발은 굳건히 남도에 딛고 서있는 모습이 바로 한반도의 형세요 참 얼이다.
본래 우리 민족은 고대로부터 머리를 북방에 두고 북진 정책을 염두에 두면서 살아 왔다. 사람은 자고로 머리가 차가워야 한다. 시릴 것 같이 푸르른 백두산 천지에 머리를 박고 발은 고요한 한라산 백록담에 담가야 건전한 정신과 기가 대륙적으로 분출된다. 하나 아쉬움이 있다면 그 화백이 그린 춤추는 여인의 손은 공허하다. 그러나 발해와 고구려 시대에는 그 양 손에 장삼이 들려 있었다. 그 긴 장삼을 들어 왼 손으로 너울을 치면 블라디보스톡이 잡히고 오른 손을 들어 저으면 만주 지역이 쓸어 내려 진다. 이렇게 해야 고대 한민족이 뛰놀던 삶터가 그려지고 이런 모습이 한반도의 참 얼굴이 된다.
설 수 있는 사람에게 왜 앉아 있느냐고 말해도 화가 나지 않는다. 그러나 서지 못하는 사람에게 같은 질문을 하면 상처가 될 수 있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내가 먼저 설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유는 자신감에서 나온다. 우리 민족의 외형이 무엇을 닮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가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한반도가 꼭 호랑이를 닮았다고 해야 우리 땅이 성스러워지고 우리 민족이 위대해 지는 것이 아니다. 반 만년의 역사를 흘러오며 살아온 이 땅이 짐승을 닮았다기보다는 오히려 사람을 닮았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그것도 이리 채이고 저리 팔려 다니며 울던 한민족의 여인을 닮았다고 보면 김 화백의 그림은 더 더욱 새로워 보인다.
드디어 경의, 동해선 철도와 도로 착공식이 열렸다. 「철의 실크로드」 시대가 눈 앞에 다가 오고 있다. 단순히 물류의 흐름이 확장되고 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실리주의 생각만으로 평가 될 일이 아니다. 더 큰 뜻이 있다. 남북 철도가 연결되면 기(氣)의 흐름이 바뀌는 역사적인 순간이 될 것이다.
세상에 나오려는 아기의 위치가 상하 전도 되어 있으면 난산이 되기 쉽고 때로는 산모와 아기 모두에게 생명의 위협을 초래할 수 있다. 섬 아닌 섬 나라처럼 동강내서 살아온 지난 날은 뒤틀려진 삶이었다.
그러나 우리 민족의 역사에서 꿈은 언제나 북방을 향해 있었다. 기는 남에서 북으로, 대양에서 대륙으로 향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만주를 야생마처럼 뛰어 다니던 발해인의 기상이고 고구려인의 웅비 정신이었기 때문이다. 철새가 꿈을 버리면 텃세로 전락된다.
대륙기질이란 무엇인가? 글을 쓰다가 머리가 혼탁해 지면 기차를 타고 백두산을 찾아 하루 밤을 그 속에서 안기고 싶다. 조금 더 여유를 내보면 시베리아 벌판에서 며칠을 지낼 수 있을 것이다. 여름 휴가에는 베네치아로 가 보자. 당나라 때 실크로드를 따라 베네치아의 유리가 경주에 까지 왔었다는 데 가서 확인을 해 보고 싶다. 이것이 내가 내리는 한반도의 대륙 기질의 정의이며 우리 민족이 지녀야 할 꿈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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