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는 개인이나 사회집단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치므로 대통령은 공동선을 추구하는데 중심이 된다는 점, 「가톨릭 사회교리」 문헌을 중심으로 인간의 존엄성이 공동선의 핵심이라는 점에 대해 지난 번 오르가니스트 마르가리타씨와 대화를 나눴다. 오늘도 역시 명동성당 구내 만남의 방에서 차를 한 잔 하면서 얘기를 계속한다.
마르가리타: 이제 설도 지나고 대통령 취임이 점점 다가오네요. 인수위에서 여러 가지 정책 대안을 내놓고 있는데, 어떤 것은 과거와는 아주 다르게 매우 참신한 개혁의 모습이 보이기도 하지만, 또 어떤 것은 지나치게 젊은 사람들 기분에 따라가는 것 같기도 하구요. 하여튼 대통령이 공동선을 위해서 구체적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요? 어려운 얘기지만 쉽게, 긴 얘기지만 짧게 설명해주세요.
나 아우구스티노: 미사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많은 얘기를 할 수 없어서 유감이군요. 인수위에서 생각하는 것들을 일일이 점검할 수도 없고요. 하지만 만난 김에 그래도 얘기는 해봅시다.
마: 지난번에 공동선의 핵심이 인간의 존엄성이라고 했죠. 동감입니다.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인간의 존엄성이 살려졌으면 좋겠습니다. 또 국가 정책의 기본 정신도 개개인의,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는 데 모아졌으면 합니다.
나: 그렇습니다. 인간 존중은 「가톨릭 사회교리」의 첫 번째 문헌인 「새로운 사태」에서부터 지적되고 있는 교회의 정신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교회가 세속 사회에 대해 요청하고 있는 가장 큰 바람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교회가 할 일, 대통령이 할 일이 따로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각각의 목표는 같은 거죠. 인간 존엄성을 살린다는 거.
마: 그래요. 하느님께서 주신 모든 생명은 다 존귀한 거고, 대통령도 자기 목적, 명예를 위해 수단으로 삼을 수는 없습니다. 학교 때 배운 민주주의, 모든 인간은 자유롭고 평등하다는 말도 결국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선언 같은 것 아니겠습니까? 자연법의 원리도 그렇고.
나: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화두가 민주주의로 연결되니까 얘기가 쉽게 풀릴 것 같군요. 새 대통령의 과제는 공동선의 증진입니다. 이것은 다르게 보면 우리 민주주의를 튼튼하게 하는 것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마: 민주주의를 튼튼히 한다고요?
나: 네, 우리 사회 여러 분야가 합리적인 성격을 보다 많이 갖는 겁니다. 상식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일단 잘못된 겁니다. 일반 국민들이 상식 수준에서 받아들이지 못하는 정책은 제대로 된 게 아닙니다. 정치는 간단한 겁니다. 절대로 복잡한 게 아니고요.
마: 맞아요. 복잡한 것처럼 보이게 하고, 국민들을 속이려 드니까 정치인들이 그 동안 나쁜 짓을 많이 해온 거죠. 역대 대통령들 중 칭찬 받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나: 다들 만족을 못하죠. 과거가 다 아름다운 건 아니죠. 과거를 아름답게 만드는 것도 새 대통령이 해야할 일 중의 하나입니다. 하여튼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민주주의 사회이고, 공동선의 증진도 결국은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 IMF다 뭐다 해서, 국가가 기업의 내부 조직까지 간섭하고, 주요 기업을 해외자본에 넘겨주고, 은행 합병, 국영기업 민영화 등을 너무 쉽게 생각하고 추진하는 것 같아요. 또 법률, 교육 등등까지도 포함하는 앞으로의 시장개방은 이해하지만 여기에 대한 준비는 소홀하죠.
나: 한국사람들이 똑똑한 거 같지만 야무지지 못한 점도 많습니다. 대통령은 개인이나 기업이 가능한 한 자유로이 활동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어야 합니다. 또 사회전체와 그 부분, 부분들을 보호해주어야 합니다. 우리의 정치-경제구조상 국제기준들을 결코 무시할 수 없지만, 새 대통령은 앞으로 이러한 배려와 보호, 준비에 신경을 집중해야 합니다. 하지만 정권과 결탁한 불법적인 이윤추구나 다수를 물리적으로 동원하는 집단의 개별적인 이익추구는 보호의 대상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때 피해를 보는 보다 많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마: 간단치 않은 얘기입니다. 작년에만 해도 우리 명동성당에서 철도 민영화반대, 가톨릭 병원노조 파업 등의 점거농성이 있었는데, 얼마나 골치가 아팠습니까?
나: 물론 현실은 말보다 훨씬 복잡합니다. 그러나 앞으로 상식 선에서의 원칙은 반드시 지켜져야 하고, 이것이 우리 사회의 관행, 즉 상식으로 점점 자리잡아야 합니다. 합리적으로 자기 주장을 해야지요. 정책의 결정도, 정책에 대한 반대도 합리적인 상식에 바탕을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대통령은 정책 여러 분야의 큰 원칙과 틀을 짜고, 이것이 잘 움직이도록 도와주는 역할만 해야지, 직접 나서서 잘 움직이게끔 온갖 일들을 해서는 안됩니다.
마: 벌써 미사시간이네요. 다음에 이어서 또 얘기를 나눕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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