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제출해야 할 과제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컴퓨터가 또 고장입니다. 별 수 없이 어머니께 손을 벌렸습니다.
어머니는 나이들어서까지 손을 벌리는 아들 신부의 부끄러움을 달래주려 애쓰시고, 그러실수록 제 마음이 더 싸해집니다.
예전에는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드리기가 쉬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머니 눈을 빼닮은 아들을 낳았다고 아버지께서는 그렇게 좋아하셨다지요. 제가 처음으로 고개를 가누던 날, 처음으로 걸음마를 하던 날, 처음으로 아버지 어머니를 소리내어 부르던 날은 어떻습니까. 어설픈 색종이 카네이션, 주위 어른들께 듣는 칭찬 한 마디…. 그런 작은 일들이 두 분께는 보람이고 위안이며 기쁨이었다고 하셨지요.
나이가 들수록 그 일이 힘들게 느껴집니다. 이제는 갖추어야 할 것도 많고, 주위에서 들리는 우울한 소식들에 조바심치지 않도록 당신 자식은 여전히 힘차게 살고 있노라고 말씀드려야 합니다.
행여 남의 집 담장 너머를 부러워 하실까 싶어 부지런히 앞을 보고 뛰어 가야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못하고 실패해도 감싸주는 것이 가족이라지만, 어디 마음이 그렇습니까. 제가 더 이상 그 분들의 자랑이요 보람이며 위안이 될 수 있을지, 그러기엔 너무 초라해져 버린 것은 아닌지…. 가족들뿐 아니라 동료 신부들, 교우들 모두가 눈에 밟히고 어깨에 매달립니다.
그래도 그러시겠지요. 『아무 것도 필요없다. 그저 건강해라』, 『신부님, 건강하게만 돌아오세요』
아마도 우리는 이렇게 사는가 봅니다. 말로는 서로 괜찮다, 아무 것도 필요없다고 하면서도 마음은 내내 안달복달입니다.
「너희가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하늘나라에 들지 못하리라」던 말씀을 묵상해 봐야겠습니다. 꾸밈없이 사람을 받아들이고 내보이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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