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떠난 사람만이 고향을 압니다.
아무래도 어딘가 허전한 타관살이에, 남의 밥 먹느라 힘들어 본 사람만이 고향을 그릴 줄 압니다. 설령 눈 앞에 호사스런 음식과 안락한 잠자리가 기다린다 할지라도 그것이 그리움을 대신할 수는 없는 법이지요. 좁고 불편할 지언정 내 집 만한 곳이 없고, 고향친구들과 나누는 옛 추억이라면 밤을 새도 모자랍니다.
처음 세상을 보는 호기심어린 눈도 고향의 몫이요, 어릴적 가슴앓이도 고스란히 고향에 매여 있습니다.
고향은 타관을 떠도는 이방인에게 언제나 그리움 그 자체입니다.
그런 고향을 잃었습니다.
언제부턴가 저는 더 이상 고향이 어디라고 대답하지 않습니다. 그저 정붙이고 살면 고향이지 어디 고향이 따로 있겠느냐고 대답하고 맙니다. 고향이라는 정겨운 말마디 안에 징그러운 따돌림이 스며든 까닭입니다.
이유없는 미움과 따돌림이 고향이라는 말의 본 뜻이 되어버린 것은 아닌지, 이제는 누가 가해자인지 피해자인지를 따지는 것도 무의미할만큼 너무 멀리까지 와버린 것은 아닌지….
게다가 그런 미움을 부추기며 승승장구하는 이들을 보면 도대체 잃어버린 고향을 찾을 날이 있기는 한 걸까 의구심만 생깁니다.
여기 사람은 이래서 안되고 저기 사람은 저래서 안된다는 몹쓸 이야기를 꾸짖기는 커녕 함께 박수치고 장단을 맞추는 것은 어찌 된 까닭인지요. 특히나 선거가 있을 때마다 기세등등하게 고향을 윽박지르는 거친 목소리들은 머물러 쉴 곳없는 발걸음을 더 무겁게 합니다.
얼마 안 있으면 또 고향을 팔아서 제 몫을 챙기는 사람들이 목소리를 높이겠지요. 고향을 볼모로 권력과 이익을 탐하는 저 음탕한 시선은 이제 거두어주십시오.
저는 잃어버린 그 고향을 찾고 싶습니다. 다시 고향을 불러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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