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관에 새 식구가 늘었습니다. 이라크에서 온 사파 신부님입니다. 딱 사람 좋은 아저씨 모습에 언제나 웃음이 떠나지 않습니다.
그런 사파 신부님이 어제는 로저 부제님과 함께 제 방을 찾아왔습니다. 말하자면 신학 논쟁을 벌인 셈인데, 양쪽 주장이 워낙 팽팽해서 중재가 필요했던가 봅니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사파 신부님의 주장 자체가 너무 황당한 것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사파」요 「이단」일 이야기를 늘어 놓습니다.
자정을 너머 신 새벽이 되도록 서로 자기 이야기만 실컷 하다가 결국은 서로 단절감만 느낀채 대화를 끝내고 말았습니다. 왜 그렇게 황당한 논리를 펴는지, 왜 그렇게 자기 주장만 내세우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사파 신부님의 어두운 얼굴을 보고 나서야 그 답을 알 것 같았습니다.
에덴 동산이 있던 나라, 세계 제 2위의 석유 매장국, 고대 문명의 발상지 같은 자랑스러운 기억들은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습니다.
게다가 짧은 영어로 더듬거릴 때 사람들이 보이는 동정섞인 시선들, 동포들의 빈한한 처지와 대비되는 런던의 화려함…. 그 모든 것들이 적대적으로 다가오는 낯선 땅에서, 사파 신부님은 반격의 칼날을 조금씩 세우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사파 신부님께 필요한 것은 귀기울여 이야기를 듣고 마음을 여는 일이었는데, 저는 갖은 신학적 정의들만 나열하고 말았습니다. 저도 비슷한 일을 겪었으면서, 남의 일이라고 쉽게 생각하고 말았습니다.
상대방의 논리를 조목조목 반박하고 경우를 따지는 일은 차라리 쉬운 일입니다. 그보다 상대가 원하고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일이 참 공부일테지요.
그리고 머리로 사는 세상보다 마음으로 사는 세상이 더 아름다우리라는 것은 분명한 일입니다. 이래서 또 둔한 학생신부는 배울 여지를 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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