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오랫동안 따라다닌 제자들은 스승을 닮아 용서할 줄도 알게 되었나보다. 마음을 크게 먹은 어느 한 제자가 자신의 관대한 마음을 알려드리고 싶기라도 한 듯 『잘못한 사람에게 일곱 번 용서하면 되는 것입니까?』 라는 질문 반, 자신의 커진 마음에 대한 자랑 반의 말을 꺼냈다. 이 말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는 말씀으로 훨씬 더 큰 수를 두신다.
용서한다는 것은 더 이상 과거라는 허상에 매이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용서할 일은 과거에 일어났고, 그 과거는 이미 가고 없고 남은 것은 그 과거가 남긴 기억과 상처뿐이다. 어떤 사람으로부터 입은 상처가 너무 아프고 억울하여 결코 용서할 수 없어 현재 이 순간에도 마음 고생을 심하게 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실제인 현실을 계속 놓치고 있고 아직도 그 과거의 상처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계속 상처를 입으며 허상을 살아간다. 이러한 삶은 제대로 사는 것이라고 할 수 없다. 용서하지 못하고 원망을 하면 할수록, 복수를 하려고 분노의 칼을 갈면 갈수록, 더욱 더 현재, 이 순간의 본질적인 삶을 잃게 된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셨다. 용서하여 과거를 과거이게 하고 현재, 이 순간으로 다시 돌아오는 것만이 나를 살리는 길이다. 예수님께서도 억울하게 당한 상처의 아픔이 엄청나게 크다는 것을 알고 계신다. 그래서 그분은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하셨다. 그 상처의 아픔이 너무나 크다는 것을 아시기 때문에 그런 상처로 다시 고생하지 않았으면 하는 연민을 지니셨던 것이다.
우리는 살고자 하고 살아야 한다. 슈바이쳐 박사는 『나는 살고자 하는 생명체들로 둘러싸인 살고자 하는 존재』라고 하셨다. 우리 모두는 살아야 하고, 이것은 정당한 것을 넘어서서 지상 최대의 과제이고 매우 아름다운 일이다. 이 온 세상에 살아있는 생명체가 전혀 없다면, 육체적으로 살아있는 사람은 많지만 정신적으로 참으로 살아있는 사람이 없다면, 그것은 아마도 큰 재난일 것이다.
참으로 살아 있기 위해서는 현재 이 순간에 있어야 한다. 현재 이 순간에 있는 사람은 과거와 미래 사이의 중립에 있는 것이고, 기억이나 상상 속의 허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실재하는 세상 속에 있는 것이며, 과거와 미래 그리고 현재를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자유로운 사람이다.
그러나 과거의 상처에 아직도 사로잡혀 있거나, 현실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여 한 때 화려했던 과거로 자꾸만 도피해 들어가는 사람은 허상을 사는 사람이고 자유롭지 못한 사람이며 병든 사람이다. 그런 사람에게는 삶의 무게가 점점 더 무거워질 뿐이다. 그런 사람은 세상에 육체적으로 살아 있기는 하지만 제대로 살아 있는 것이 아니다. 언젠가 한 번은 현실을 직시할 용기를 내야 한다. 미루면 미룰수록 더 큰 용기를 동원해야 할 뿐이다.
어떤 사람은 죽음의 순간까지 이 용기를 미루기도 한다. 그러나 결국 한 번은 용기를 내야 한다. 죽음의 순간에도 용기를 내지 못하면 한 번도 제대로 살지 못한 삶이 되는 것이고, 죽음의 순간에 용기를 내면 이미 모든 것이 늦은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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