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전국이 서서히 선거 열풍에 빠져들고 있다. 세류에 영합해 당파와 이기에 기반한 정치권의 이합집산이 가속화됐고 일부에서는 벌써부터 금권 타락 선거의 조짐이 보이기도 한다.
정치권의 풍토에 신물이 난 국민들은 이제 대체로 선거에 무관심하다. 하지만 대통령 선거는 지방선거와는 달리 높은 관심사가 되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다. 최근 들어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이면 차기 대통령이 누가 되느냐가 단연 화두가 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지난 10월 24일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에서 주요 4당 대선 후보들에게 공개적인 정책 질의를 했고 각 후보들이 이에 대한 응답을 보내왔다. 주교회의 차원에서 대선 후보들에게 주요한 이슈들에 대한 정책을 물은 것은 이번이 처음일 것이다.
정평위가 질의한 내용은 매우 광범위하지만 그리스도교적인 가르침에 바탕을 두고 인간 존엄성과 공동선을 실현하기 위해 무엇을 할 생각인가 하는 질문이라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들이 보내온 답변을 살펴보면서 우리는 다소간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 유력 후보들 중에는 그리스도교 신자이면서도 집권한 후 펼칠 정책 방향에 있어서 과연 그리스도교적 정신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가 하는 의문을 갖게 하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 나라는 수많은 종교들이 공존하고 있으며 종교를 갖지 않은 국민들도 많기에 종교적 가르침에 바탕을 두고 국정을 운영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리스도교적 정신이 갖는 보편성과 인간 존엄성에 대한 존중은 종교적인 가르침에 그치지 않으며 인류 공통의 선익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대선 후보들은 좀더 전향적인 자세를 보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유권자의 책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자 한다.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지금까지 종종 금권과 부정, 지역 이기주의, 파벌을 조장하는 후보들에 의해 올바른 선택을 하지 못한 적이 많았다. 정치가 올바르게 서지 못한 데에는 우리 국민들에게도 그 일부의 책임이 있을 수밖에 없다.
대통령이 되기를 희망하는 후보들은 국민의 뜻을 저버릴 수 없고 저버려서도 안된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유권자들이 신성한 한 표를 올바르게 행사해야 한다. 어떤 유혹과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참으로 민족과 국가를 위해,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 수호를 위해 일할 수 있고 일할 의지를 지닌 사람을 뽑아야 한다.
이제 대선은 한 달이 채 못 남았다. 국정을 이끌어나갈 대통령을 올바르게 선택하기 위해 각 후보들의 정책을 더욱 관심 있게 살펴보면서 무관심과 이기를 넘어선 지혜로운 선택의 자세를 다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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