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열기가 한반도를 휘감았던 지난 유월, 친구 생일에 초대받아 들뜬 마음으로 길을 걷던 소녀 둘이 미군 장갑차에 깔려 숨진 사건이 일어났다(6월 13일).
이 사건에 대해 미8군 군사법정은 운전병 마크 워커와 관제병 페르난도 니노에게 무죄평결을 내렸다(11월 20∼23일). 니노 병장이 여학생을 발견하고 운전병에게 정지하라고 외치는 등 관제병의 의무를 다했으나 통신장비 결함으로 전달되지 않아 사고가 불가피했다는 것이다.
불가피한 사고라니? 중학교 2학년인 효순이와 미선이의 죽음이 정말 그렇게 불가피한 죽음이었을까? 그럴 수가 없다.
같은 유월에 온 국민이 한마음으로 월드컵 축구에서 1승이라도 하길 기원하였고 실제 우리는 그 높은 16강 고지를 넘어 4강까지 이르는 신화를 만들어내지 않았던가?
우리는 강대국에 기죽는 민족이 아니라, 한다면 해내는 강한 기질을 가졌고, 아시아의 자존심으로 자리매김되지 않았던가! 그런데 여린 소녀들이 꿈을 펼치기도 전에 비명에 가야 하는 불운이 이 땅에서 일어난 걸 어떻게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정신을 가다듬고 생각해보니 그 소녀들의 죽음은 불가피한 사고였다. 그렇다. 20세기의 동서이데올로기가 여전히 한반도에 드리워져 있는 한 그 사고는 불가피했다.
남한과 북한이 대치하고 있는 한, 우리는 매 순간 전쟁 중이고 전쟁은 무고한 생명의 죽음도 합법화시키는 마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20세기 한반도의 역사는 일제의 수탈과 침략에 이어 동서의 이데올로기 분쟁에서 참혹한 희생자로 전락하는 역사였다.
1910년 2월 안중근 의사는 「동양평화론」에서 20세기의 흐름을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지금 세계는 동서로 나뉘어져 있고 인종도 각기 달라 서로 경쟁을 하고 있다. 청년들을 훈련시켜 전쟁터로 몰아 넣어 수많은 귀중한 생명들을 희생시켜 피가 냇물을 이루고 물고기가 널려짐이 그치지 않고 있다. 삶을 좋아하고 죽음을 싫어하는 것은 모든 사람의 한결같은 마음이거늘 이 무슨 광경이란 말인가. 말과 생각이 여기에 미치면 뼈가 시리고 마음이 서늘해진다』
그러한 안중근 의사의 예언자적 외침이 21세기인 지금도 우리에게 유효하다. 한반도는 아직도 그 전쟁의 연장선상에 놓여있으니까.
미군들이 면죄부를 받는 날, 같은 신문지상에는 20세기 동서 이데올로기의 방어벽 역할을 해왔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21세기 테러방어전선으로 재편되고 있었다.
동구권 7개국이 나토에 가입하면서 냉전의 흔적은 사라지고, 세계질서는 미국을 중심으로 뭉친 세력과 그에 대항하는 테러집단으로 분류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한반도는 동서이데올로기의 각축장으로서 지구상 유일하게 남아 있으면서 동시에 부시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 이후 테러전선으로 다시 부각되고 있다.
효순이, 미선이의 주검을 사진을 통해 보면서 나는 분노를 넘어서서 뼈가 시리고 설움이 북받쳤다. 소녀들의 소리없는 항변이 우리의 마음을 울리고, 장갑차 아래 으스러진 뼈가 나의 모든 판단을 중지시켰다.
이건 아니라고. 우리의 아이들이 이렇게 무참히 죽어가서는 안된다고. 그런 일이 「불가피하게」 일어나지 않도록 무언가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현행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으로는 어쩔 수 없다』는 무책임한 발언으로 그들의 죽음이 해명될 수 없다고!
그 소녀들의 죽음은 한반도의 십자가 사건이다. 2000년 전 팔레스티나 땅에서 죄없이 돌아가신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우리 땅에서 재현된 것이다. 십자가 사건은 당시 로마의 정치권력과 유대교의 종교세력이 서로 결탁하여 무죄한 사람을 불의하게 죽인 사건이었다.
대제관 가야파는 『한 사람이 이 백성을 위해 죽고 온 민족이 멸망하지 않는 것이 당신들에게 이롭다는 것도 헤아리지 못하는군요』(요한 11, 50)라고 말하면서 예수님을 로마법정으로 넘겼고, 빌라도 역시 예수님의 무죄를 알면서도 정치적 편법으로 십자가 죽음을 선고하였다.
마찬가지의 논리로 효순이, 미선이의 죽음은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불가피하다고 합리화되고 있다.
그러나 신앙인이라면 세상의 논리를 넘어서서 하느님의 진리를 알아들을 수 있어야 하겠다. 모순과 부조리가 가득찬 세상의 삶 한가운데에서 그리스도교 신앙은 부활을 선포한다.
부활하신 주님은 정치적 편법에 굴하지 말고 진리를 위해 헌신해야 함을 우리에게 일깨워준다. 무죄한 사람의 피를 마신 땅은 하느님께 울부짖으며 하느님께서는 그 소리를 외면하지 않으시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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