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한 30대 초반의 내외가 네살 짜리 아들을 데리고 정착하기 위해 한달 전 쯤에 대구에 왔다.
대구대교구 민족화해후원회 임원 몇 사람이 그들이 우선 이 곳에 자리 잡는데 적은 도움이라도 주기 위해 방문하였다. 그들이 새 보금자리로 자리 잡은 집은 11평짜리 영구임대 아파트, 비좁은 아파트가 오히려 넓게 보일 정도로 빈방에서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그들은 정착지 대구에 무사히 도착했다는 안도감을 갖고 있긴 했지만 그들의 초췌한 모습에는 외로움과 피곤함, 그리고 불확실한 앞날에 대한 불안이 짖게 묻어 있었다.
우리는 잠시 서로 인사를 나누고 그들이 앞으로 대구에서 사는데 필요한 상식들을 들려주는 등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나누었는데, 화제는 자연 그들이 탈북하게 된 과정들에 옮아갔다.
시골에서 살면서 남편의 노동으로 생계를 꾸리던 그들도 예외없이 식량난으로 끼니를 제대로 이어 가기 힘들었다. 그런 가운데 부인이 중병에 걸렸고, 설상가상으로 아들이 또 중병에 걸렸다. 북에서는 식량 구하기도 힘드는 판에 약을 구하거나, 병원에서 치료 받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하는 형편이어서 남편은 가족들의 병을 속수무책으로 보고만 있어야 했다.
남편은 어차피 병들고 굶어 죽을 바에는 살기 위해 목숨을 걸기로 했다. 중국에 가면 돈을 벌 수 있다는 소문을 들은 것이다. 그는 아내와 아들을 남겨 두고 국경을 넘어 중국으로 밀입국하였다. 돈을 벌어 가족의 약을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무서운 것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중국에서 몇 달을 막노동을 하면서 피땀을 흘리는 노력을 했으나 약간의 돈과 약을 구하기는 했어도 처자식의 병을 고치는데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집으로 돌아 온 그는 다시 큰 결심을 하였다. 중국에서 몇 달을 지내면서 남쪽 대한민국은 자기가 노력한 만큼 인간답게 살 수 있고, 의술이 좋아서 큰 병도 고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가족을 데리고 함께 남쪽으로 갈 결심을 하게 된 것이다.
그들 가족은 작년 가을 북한에서 중국으로 탈출하는데 성공했으며, 몇 달을 숨어 살면서 남한으로 들어 올 길을 찾았으나 좋은 방법을 찾지 못하자 또 한번 모험을 감행했다. 그들은 생명을 걸고 중국 공안원과 몸싸움을 벌이며 어느 대사관에 진입하는데 성공했고, 한국으로 오게 되었다.
이 가족들 보다 2년여 앞서 중국을 거쳐 대구에 자리 잡은 30대후반의 탈북가족이 있다. 이들의 지금 소망은 하루 빨리 돈을 좀 모아서 중국에 한번 가는 것이란다. 중국에 가고 싶은 이유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대한민국 여권을 가지고 자기들이 그렇게 고초를 당하던 그 곳에 가서 내 보란 듯이 거리를 한번 활보하고 싶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또 하나 북에 남겨 둔 가족과 아직도 중국에서 숨어 지내며 어렵게 살고 있는 인척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 싶기 때문이라고 했다.
당장은 최소한의 생계를 이어 간다 해도 장래가 불안하고, 외롭고, 그러면서도 소박한 소망을 가지고 있는 이들을 대하면서 「우리에게 이들은 정녕 누구인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는 이들을 참으로 이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가? 라는 의문을 가지게 하는 일들을 자주 접하기 때문이다.
정부에서 뿐만 아니라 사회 및 종교단체들의 북한에 대한 경제적 지원이 본격화되면서 이에 대한 회의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은 것은 있을 수 있는 일로 받아들여 진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들이 탈북자들에게까지 미치는 것을 보면 안타깝다.
특히 북한의 핵문제가 큰 이슈로 떠오르면서 탈북자들도 한 묶음으로 하여 「우리가 북쪽 사람들을 왜 도와야 하느냐?」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들어내는 사람을 대할 때면 말문이 막힌다.
탈북자! 그들은 누구인가? 「이데올로기의 희생자」와 같은 거창한 타이틀을 달아 줄 그런 특별한 사람도 아니다. 그들의 대부분은 원죄처럼 북한이라는 폐쇄된 곳에서 태어난 죄를 짊어졌을 뿐이다.
그들은 북한 체제의 희생자요, 살기 위해서 목숨을 거는 모험을 하였고, 그래서 목숨을 부지하게 된 사람들일 뿐이다. 그들은 사상이나 체제를 생각한 것이 아니다. 그들에게는 북쪽은 살 수 없는 곳이고, 남쪽은 살 수 있는 곳일 뿐이었다.
그들은 우리가 기피하고 싶은 북쪽의 그런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남쪽에 가면 사랑이 있고, 인간으로 대접을 받을 수 있으며, 노력한 만큼 대가를 받아 살 수 있는 곳으로 믿고 목숨을 걸고 남쪽을 찾아 왔으며, 또 남쪽으로 오기 위해 제3국에서 고난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경제적인 어려움도 있지만 외로움과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더 힘들어 하는 그들은 우리에게 예수님이 말씀하신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마태25, 40)일 뿐이다.
정만진씨는 동아일보 기자로 활동했으며, 현재 대구대교구 민족화해후원회 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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