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주님!」하고 부른다고 다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확실하게 손수 실천하는 사람이라야 하늘나라에 들어간다』(마태 7, 21 참조).
이 글은 1965년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통해 반포된 「현대 세계에 있어 교회에 관한 사목헌장, 기쁨과 희망(GAUDIUM ET SPES)」 제93항에 나오는 표현이다. 이는 정치공동체 속에서 세속적인 삶을 살아야만 하는 우리 신자들이 영적인 것만을 추구한다고 모두 구원을 받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달리 말해 우리 각자가 딛고 선 세상에서 하느님 뜻을 실천하여 「지상의 나라」를 「하느님의 나라」로 만들려는 노력을 반드시 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렇지 않으면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정치 공동체의 법적 기초 제정, 국가의 통치, 여러 기관의 영역과 목표의 설정, 통치자 선거 등에 있어서 모든 국민이 아무런 차별도 받지 않고 언제나 자유롭게 능동적으로 더 잘 참여할 수 있는 실질적 가능성을 제공하는 정치적 법률적 구조의 창안은 인간 본성과 완전히 부합되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국민은 공동선의 증진을 위하여 자유 투표를 할 권리와 동시에 의무를 잊지 말아야 한다. 사람들에게 봉사하려고 국가 복지에 헌신하며 그러한 직무의 책임을 받아들이는 이들의 활동을 교회는 마땅히 찬양하고 존중한다』(기쁨과 희망 제75항).
오늘날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신자들에게 하느님 뜻의 1차적인 실천은 우리에게 주어진 권리이자 의무인 투표권 행사이다. 우리에게는 공동체의 공동선을 위해 투표를 해야 할 의무가 있다. 민주주의의 선거제도가 진리 발견을 위한 가장 좋은 수단은 아니지만, 가장 덜 나쁜 수단임은 분명하다.
나아가 교회는 『정치 참여 자체는 인간의 존엄성이 요구하는 사항』(지상의 평화 제73항)이며 『세상에 대한 하느님의 뜻은 사람들이 마음을 합하여 현세 질서를 개선하고 끊임없이 완성해 나아가는 것』(평신도 교령 7항)이라며 선거를 통한 정치 참여가 민주주의의 기본이며 시민의 의무이자 권리임을 변함없이 강조하기까지 하고 있다.
아울러 정치 공동체의 성숙도는 사람들이 정치에 참여하는 양상과 필연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밝히고 있다. 이것이 교회가 선거와 투표라는 정치적 활동을 중요하게 여기는 까닭이기도 하다.
12월 19일, 우리는 새로운 삼천년기의 첫 대통령을 뽑는 제16대 대통령 선거를 치른다. 그 어느 때보다 중대한 기로에 선 현실에서 신자들은 어떤 자세를 지녀야 할 것인가.
먼저 똑바로 투표하자. 그러기 위해서 후보와 정책을 면밀히 분석하고 판단해야 한다. 어떤 후보와 정책이 공동선의 증진에 근접하는 지를 판단하고 하는 투표가 「똑바른 투표」이다.
개인(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고 삶의 질을 높이는 일, 집단(사회)의 이익 추구를 보장하고 이 보장을 위해 자발적인 연대성을 충분히 확보해주는 일, 국가는 개인과 사회의 자율성이 드러나도록 보조적인 역할에 머무는 일, 이러한 것들이 공동선을 위한 정신들이다. 따라서 후보와 정책이 공동선의 정신에 맞는 지를 판단하는 일은 무척 어려운 작업이기도 하다.
다음으로 반드시 투표하자. 어떤 투표 행태가 나오든지 간에 정치에 대한 무관심, 주권행사의 포기, 기권은 민주주의에 대한 범죄이며, 자기 삶의 포기이다.
이런 사람은 단테에 따르면 모두 지옥에 가며, 지옥 가서도 기권에 대한 벌을 받는다고 한다. 단테의 「신곡」(지옥편 제3곡)에 보면, 『빙빙 돌면서 질주하는 한 폭의 기(旗)가 보였는데/ 그것은 잠시도 멈추지 않았다/ 그 뒤를 따라 몹시도 긴 군중의 행렬이 이어졌는데/ 이토록 많은 사람을 죽음의 신이 앗아갔으리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고 쓰여져 있다. 이 사람들은 생전에 「기회주의자」라 무관심을 가장하고 기치(旗幟)를 선명하게 하지 않았기 때문에 죽은 뒤 한 폭의 깃발 뒤를 쫓아다니고 있다는 것이다.
시궁창 같은 정치판에 마음에 드는 후보가 한 명도 없을 수 있다. 그러나 기권은 시궁창을 더 썩게 한다. 국민들이 침묵하고 수동적이 되면 정치꾼들은 국민들을 더 무시하고, 개인적인 파당의 이익추구에 몰두하게 된다.
우리 나라에서는 그간 40% 정도의 득표로 대통령이 당선되었다. 투표율이 70% 정도 된다고 해도 이렇게 당선된 대통령은 전국민의 28%의 지지만을 받는 것밖에 안 된다. 프랑스처럼 결선투표제, 2차투표제가 있어서 과반수의 지지를 확보해준다고 해도 투표율이 낮으면, 지지도는 떨어지게 된다.
투표는 최소한의 행동이지만 가장 중요한 실천의 수단이다. 공동선을 증진시킬 수 있는 대통령을 뽑자. 똑바로 투표하자. 똑바로 투표하기 힘들면 최소한 기권은 하지 말고 반드시 투표하자. 똑바로, 반드시 투표하지 않는 사람은 모두 지옥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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