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님.
지난밤, 격앙됐던 가슴이 아직도 쉽게 가라앉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마 신부님도 그러했으리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참으로 혁명적이라 할만 하지요.
대선 이후 우리 사회 곳곳에서는 이번 대선 결과를 두고 이러 저러한 진단과 분석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그 근저에는 놀라움과 희망이라는 공통분모가 있더군요.
놀라움이란 더 이상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우리 국민들의 정치의식」을 두고 하는 말이겠고, 희망이란 「정치의 질적 변화」를 두고 하는 말이겠지요.
16대 대선의 교훈
신부님. 전 이번 대선을 지켜보며 큰 소용돌이를 앞둔 우리 사회의 거대한 변화의 기운을 느꼈습니다. 마치 우리 국토의 척추인 「백두대간」이 꿈틀거리는 것과 같은 그러한 기운을 말입니다.
그 변화의 기저는 바로 「탈 권위주의」라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위로부터 강요되어온, 혹은 답습되어왔던 권위에 대한 부정이지요.
그처럼 당연시되어온 권위가 우리 사회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다는 뼈저린 반성과, 더 이상 이대론 안된다는 다급함이 변화를 선택하게 한 것이겠지요.
이번 대선 결과는 또 반세기 가까이 우리 사회를 지배해온 수직적인 상하관계가 거부되고 수평적인 상호관계로 전환되고 있음을 드러내는 표시일겁니다.
일방적 소통이 아니라 대화의 시대로의 진일보 말입니다. 그곳엔 서로에 대한 이해와 협력이 절대적이지요.
주목할 것은 이러한 변화를 주도한 것은 바로 2~30대 젊은이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소위 「주변세력」에 불과하던 그들이 선거참여라는 방식을 통해 자신들의 의지를 가시화했고, 그럼으로써 이 사회를 선도해가는 「주도세력」으로 탈바꿈했다는 겁니다. 가치와 신념, 방법까지 우리 사회가 송두리채 변화를 모색할 수 밖에 없는 기로에 섰다고 보여집니다.
신부님. 한편으로 이번 대선을 지켜보며 우려를 지울 수가 없습니다. 변화를 선택한 그들은 바로 우리 교회의 젊은이들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과연 그들이 오늘의 교회구조에 어떠한 반응을 보일런지요.
그래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신부님. 이젠 교회 안을 들여다 봐 주십시오. 지난 30여년간 신부님의 행보는 참으로 놀라웠습니다. 지금에서야 느끼는 이 변화에의 욕구와 현실을 신부님께서는 이미 수십년전에 내다보시고 싸우셨습니다. 그 성과들은 이루 다 말로 할 수 없지요.
이젠 교회 걱정을…
그러나 그간 우리 사회도 많이 변했습니다. 국민적 역량도 놀랍게 성숙했습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신부님, 이젠 교회로 눈을 돌려주십시오. 교회를 걱정하는 다른 많은 지성들과 함께 우리 교회에 고언과 직언을 해주십시오.
시대의 징표를 읽지 못하는 교회는 생명력을 잃을 수 밖에 없습니다. 오늘날 서구교회가 단골 사례이지요. 두렵습니다.
내적(영적) 갈증에 지친 많은 이들이 교회에 매력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행정가요 관리자로 변한 사목자들에 대한 신자들의 시선이 곱지 않습니다. 친교를 이루어야 할 공동체에 개인주의와 집단 이기가 무섭게 확산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가난하지 못한 교회의 앞날은 더욱 불안해 보입니다. 예로부터 교회에 「남은 자」(Remnant)들은 모두가 가난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신부님, 이젠 교회를 걱정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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