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개발기구(UNDP)의 「2002년도 인간개발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여성교육지수는 선진국 수준(173개국 가운데 18위)이지만, 여성권한신장지수는 하위권(66개국 가운데 61위)에 맴돌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남자가 할 일, 여자가 할 일이 따로 정해져 있어서, 「여자는 가정에서 살림 잘하고 아이 잘 키우면 된다」고 하는 사고방식이 만연해 있었습니다. 그러나 21세기 「남녀평등」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인간이라는 관점에서 남성과 여성을 새롭게 바라보기 시작하였습니다.
즉, 『여자이기 때문에』 차별받는 현실은 인간의 기본권리를 침해하는 것으로 간주되고, 각 사람이 지닌 가능성과 잠재력을 최대한 꽃피울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인권을 지키는 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인권」이라는 말은 노동자의 인권과 관련해서 많이 거론되었고, 여성의 인권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습니다. 여성에 대한 폭력은 극히 개인적이거나 사소한 문제라고 보았습니다.
그러다가 정치적 자유나 신체의 자유라는 측면에서 인권을 말하던 것이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사회권이라는 개념이 부각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즉 인간의 존엄성이 인권의 가장 기본개념으로 떠오르면서 정치적, 신체적 자유에서 인간적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권리로 확대되어 이해되고 있습니다.
유엔은 지난 1979년 여성차별철폐협약(CEDAW)을 통해 정치, 법률, 교육, 고용, 모성보호, 가정생활 등의 부분에서 여성인권을 보장하도록 명시하였습니다.
이어서 유엔은 1993년 비인회의, 1995년 북경 인권회의에서 여성인권에 대한 지지선언을 잇따라 채택했고 성폭력을 보편적 인권문제로 부각시켰습니다.
오늘날 여성들이 처한 빈곤과 폭력의 문제에 대해 전세계적인 차원에서 함께 대처하고 있으며 『여성의 권리는 인권』이라는 의식이 크게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에 발맞추어 우리나라에서도 여성들을 위한 일련의 법적인 조치들이 마련되었습니다. 1994년 「여성발전기본법」이 제정되었고 1999년에 「남녀차별 금지 및 구제에 관한 법률」, 「남녀평등고용법」이 제정되었습니다.
이 법들은 남녀의 평등한 기회 및 대우를 보장하는 한편 모성을 보호하고 직업능력을 개발하여 여성의 지위향상과 복지증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합니다. 육아와 양육을 위한 모성을 보호받으면서 성별에 의한 차별없이 그 능력을 사회에서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보장해주는 일이 여성인권을 위한 노력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한 시대의 흐름에 따라 여성의 인권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여러 교서들과 담화를 통해 표명되었습니다. 이 문서들은 여성들의 존엄성을 일깨우고 가정생활과 공공생활에서 여성의 권리를 세워주는 일을 강조합니다.
또한 아시아 교회에서도 1986년 도쿄에서 열린 제4차 아시아 주교회의(FABC) 정기총회에서 『세계 인구의 절반이 여성임을 인식하고 그들의 존엄성을 회복시켜주며, 여성들이 세계와 교회에서 자신들의 역할을 정당히 수행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복음적 요구이다』라고 천명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전 세계적인 흐름에 한국 교회는 미처 따라가지 못한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한국 교회는 생명권 문제에 집중해서 태아의 인권은 많이 강조하고 있지만 그에 상응하는 여성의 권리나 모성의 역할, 여성을 위한 사회적 제도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200주년 사목회의 의안에서 여성과 관련된 내용을 보면 여성들의 참여 의식을 높여 주어야 하고, 지도력을 인정하고 지위를 향상시켜야 하며, 여성들의 자아 실현을 위해서 교회가 노력하고 연구해야 한다고 제안하고 있지만 이런 제안들은 문헌 속에 묻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그러한 제안이 사회의 흐름과 비교해 보면 아주 초보적인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실천에 옮겨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의 관점에서 보면, 하느님의 모습을 따라 창조된 남성과 여성은 서로 같은 본성과 같은 원천을 가졌으며, 그리스도께 구원되어 같은 목적에로 함께 불리움을 받았습니다(사목헌장 29항).
인간기본권에 대한 차별대우는 그것이 사회적 차별이든지 문화적 차별이든지 혹은 성별, 인종, 피부색, 지위, 언어, 종교 등에 기인한 차별이든지 모두 다 하느님의 뜻에 어긋나는 것이므로 극복되고 제거되어야 합니다.
여성신자들은 제도교회의 들러리와도 같은 역할에서 벗어나 「우리가 교회」라는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자의식을 지닐 수 있어야 하며, 의사수렴과정이나 결정과정에도 적극 참여하여야 하겠습니다. 여성의 인권은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존엄성을 깨닫고 기본권을 지켜나가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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