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과율은 물리학의 세계에서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생활에도 매우 중요한 원리이다. 독일의 W. K. 하이젠베르그가 1927년에 양자역학의 기초를 이루는 불확정성의 원리를 발표하고 난 뒤, 적지 않은 수의 사람들이 『이제 인과율은 통하지 않는 구시대의 원리가 되려나 보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양자역학의 영역에 해당하는 원리이어서 이것에 의해 인과율이 폐기처분될 수는 없다.
인과율이 무시되는 세상은 인간이 살아갈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말 것이다. 인과율은 원인이 있으면 반드시 결과가 있고, 결과가 있으면 반드시 원인이 있다는 것을 알려 준다. 오늘 내가 우리 집에 살고 있는 것은 과거에 이 집을 지은 것과 그것을 우리 가족이 매입하거나 임대한 것에 원인이 있다. 배가 고플 경우 밥을 먹으면 해결된다. 배가 고픈 원인이 있고 밥을 먹는 과정이 있으며 배가 부른 결과가 있다. 이러한 인과율 덕분에 우리는 과거에 대한 추정과 현재에 대한 납득 그리고 미래에 대한 예측을 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삶에 대해 이해와 설계를 할 수 있고 살아갈 수 있다.
불교에서도 인과율을 매우 중시한다. 원인이 있기 때문에 결과가 있다는 것에 대한 불교도의 믿음은 대단히 크다. 이것을 필자는 「달라이 라마 예수를 말하다」는 책에서 깊이 접했다. 인과율은 우리의 삶을 가능하게 하는 매우 소중하고 반드시 존중되어야 하는 법칙이다. 인과율의 법칙이 무너진다면 인간의 삶은 대단한 혼란에 빠져들고 말 것이다.
그런데 이 세상 모든 현상이 이 인과율에 의해서만 일어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미리 모든 것을 예측할 수 있어서 실수가 거의 없을 것이고, 결과에 대한 원인을 추정하는 데에도 한결 수월할 것이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들이 인과율의 법칙에 의해서만 일어나지 않는 데에 어려움이 있다.
늦가을에 가지를 떠난 낙엽이 어디에 떨어질는지 계산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고, 토끼가 언제 어디로 뛸는지를 미리 아는 것은 좀 더 어려운 문제이며, 내 마음이 언제 어떻게 동할지를 아는 것은 더욱더 어려운 문제이고, 내 친구가 손을 펼지 주먹을 쥘지를 아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문제이며, 낯선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어떤 행동을 할지를 미리 아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이 세상에는 인과율 덕분에 미리 예측하여 대비할 수 있는 것도 많이 있지만, 그것이 통하지 않아서 불확실한 것도 대단히 많다. 우리가 겪는 많은 어려움은 바로 이 불확실한 것들로부터 오는 것이다. 특히 인간의 이성과 의지 그리고 감정이 개입되는 영역에는 불확실성이 언제나 개입한다. 백화점에서 어떤 물건을 보고 한 사람은 좋아하는데, 그와 가장 가까운 짝은 좋지 않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붉은 색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노란색을 좋아한다. 이것을 어떤 인과율로 설명할 수는 없다. 그렇다는 사실을 그냥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한 편으로 이 불확실성 덕분에 우리의 삶이 이렇게 다양하고 풍부한 것이다. 이 세상에 인과율만 통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매우 획일적인 세상이고 너무도 빡빡하여 살아 볼 만한 세상이 되지 못할 것이다. 불확실성은 우리의 삶을 고통스럽게도 하고, 살아 볼 만한 것으로 만들기도 한다. 삶이 이러한 구조로 되어 있는 것이므로 우리는 이것을 인정하여 불확실한 일이 앞으로도 계속해서 일어날 것이란 것에 대해 단단히 마음먹고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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