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사목자와 수도자는 물론이고 웬만한 신자들이 모이면 교회일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되고, 여러 가지 이야기들 가운데서도 냉담자 문제에 대해 걱정하는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된다. 이러한 현상을 두고 어떤 이는 보통 신자들이 냉담자 문제를 가지고 걱정들을 하는 것에 대해 좋은 현상으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을 두고 좋은 일로만 볼 수 없는 것이 요즘의 교회 실상이 아닌가 싶다. 그것은 교회가 당면하고 있는 냉담자 문제가 일반 평신도들도 모이면 우려의 화두로 삼아야 할 정도로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접하고 있는 자료에 의하면 냉담자 수가 본당에 따라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긴 하지만 평균치로 보면 전체 교적 신자 수의 40%나 된다고 한다. 이 냉담자의 수는 10년 전에 전체 신자의 28.7%이든 것에 비해 11.5%포인트나 늘어난 것인데, 이를 10년 전과 지금을 인원으로 비교 하면 거의 배에 가까운 수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냉담자 증가추세를 보면 걱정하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평신도들까지 걱정하고 우울하게 만드는 것은 지금까지의 냉담자 증가 보다 앞으로의 증가 추세가 더 가파르게 오를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 때문이다.
이러한 어두운 전망은 현재 주일미사 참례 수로 들어나고 있는 것이다. 자료들에 의하면 현재 미사참례 수는 전체 미사참례 의무자의 약 30%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이 30%는 냉담교우 40%를 제한 수, 즉 정상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하는 60%의 신자 절반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를 단순평균치로 환산하면 냉담자를 제외한 신자들도 주일미사 참례를 2주에 한번정도 밖에 하지 않는다는 계산이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평균치로 계산 함은 실제와는 차이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 신자들 가운데는 열심한 신자도 있고, 덜 열심한 신자도 있기 때문에 그 구분없이 평균치로 계산하는 것은 주일미사참례 의무를 지키는 정도를 분석하는데 별 의미가 없어 보인다.
실제로 평소 본당에서 신자들을 접해 보면 보통 신자들은 주일미사를 궐하지 않고 거의 모두 참례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를 참작하여 분석해 본다면 주일미사 참례자 수가 냉담자를 제외한 나머지 신자의 절반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은 절반은 판공성사만 보고, 주일미사 참례는 1년에도 몇 번 밖에 하지 않는 것으로 추론이 가능한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신자들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하는 것인데, 보통신자들의 보통머리로는 그들을 그대로 두면 냉담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것이다. 즉 그들은 지금은 1년에 한 두 번 판공성사를 보기 때문에 냉담자로 분류되지는 않지만 언제 냉담해 버릴지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신자들끼리 「예비 냉담자」라는 용어를 쓰기도 한다.
우리는 선교활동을 해 보면 예비자를 권면 하는 것 보다 냉담자를 회두 시키는 것이 얼마나 더 어렵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차라리 이들이 하느님을 알지 못하는 상태로 그냥 두는 것이 그들을 위해서도 좋았을 것을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어떤 이는 「냉담자도 교우다」면서 언젠가는 교회로 돌아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가 하면 어떤 이는 냉담자라도 그리스도 신앙인의 뿌리는 지니고 있기 때문에 비신자 보다는 났다고 말하기도 한다.
보통 평신도들은 이렇게 냉담자와 냉담할 위험성이 있는 신자가 크게 늘어나고 있는데 대해서 걱정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원인에 대해 나름대로 의견을 가지고 갑론을박하는 일도 있다. 보통 평신도들이 나름대로 개진하는 의견들은 일반적인 이야기들을 벗어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좀 엉뚱한 것 같으면서도 우리 보통 평신도들이 늘상 겪고 있는 일들이 제기되기도 하여 공감대가 형성 되기도 한다.
A: 성당에 와도 재미가 없어서 냉담하는 사람이 늘어난다. B: 성당을 재미로 다닌다 드냐? C: 성당에 오면 재미를 느낄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여기서 A가 말하는 「재미」가 세속적인 것을 말하는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 이에 항변하는 B는 세속적인 뜻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C는 참 신앙생활에서 비롯되는 기쁨을 말하고 있다. 여기서 함께 한 사람들은 「재미」가 세속적인 것이던, 신앙적인 것이던 간에 재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문제가 된다고 생각한다. 성당에 가고 미사참례를 하고, 활동하면서 그 가운데서 세속적인 의미의 재미를 추구하는 것도 문제이고, 참 신앙생활의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도 문제라고 생각한다.
『재미가 없다』 어떻게 보면 아주 사소한 것 같은 것이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 한번 쯤 되씹어 보아야 할 말이 아닌가 싶다. 교회 일이 각기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없는 것이기에 이 말에서 지금 교회가, 그리고 평신자들이 부닥치고 있는 문제들이 이어져 들어 날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신자들이 신앙생활에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은 신자들의 냉담을 예방하기 위해 연구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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