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관적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명백한 사실이다. 우선 이것은 나의 존재에서부터 확인하게 된다. 내가 이렇게 있는 것 자체도 객관적 세계의 일부이다. 금방이라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나의 몸이 여기에 이렇게 있고, 살아온 삶이 있으며, 희망하는 미래가 있고, 이렇게 사고하는 내가 현재, 이 순간에 두 눈을 뜨고 있다.
그리고 나의 외부에 많은 것들이 객관적으로 존재하고 있다. 산과 들, 하늘과 바다, 도로와 집들, 수많은 사람들과 동식물들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고, 이들이 있기에 나의 삶 또한 가능하다. 나는 이들로부터 유래했고, 이들과의 끊임없는 교류 속에서 오늘의 나를 유지해 나가고 미래를 희망하고 있다. 이들의 존재를 부인하고는 영?육 간의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없을 뿐더러, 도대체 삶이 진행될 수 없다. 외부에 나 아닌 다른 존재인 객관적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선택사항이 아니라 의무사항이다.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 이러한 객관적 세계의 존재를 인식하고 그것과의 관계를 맺어 가는 것은 나 자신이다. 외부에 아무리 많은 객체들이 존재한다 하더라도 내가 오관을 닫고 있으면 그들은 나에게 있어서 없는 존재와 마찬가지다.
내가 지금까지 알고 있는 모든 것, 머리 속에 그릴 수 있는 모든 것, 눈앞에 보이는 현재의 모든 것은 나의 주관적 세계가 받아들여 재구성한 나의 세계이기도 하다. 밝은 해가 떠 있는 대낮에 온 천지를 밝게 보고 있는 것은 나 자신이라는 말이다. 앞으로 좀 더 자세하게 언급하게 될 이 엄청난 크기의 우주는 온통 칠흑과 같은 어둠의 세계이다. 이 세상 온 천지에서 밝게 빛나는 곳은 저 멀리서 빛을 내는 항성들과 그 빛을 받아 반사하는 지구와 같은 행성들이나 위성들의 표면뿐이다. 그것도 나의 두뇌가 눈을 통해 빛을 받아들여 그렇게 인식하고 있을 뿐이다. 맹인은 두 눈이 성한 사람이 보고 있는 세상을 보지 못하고, 개, 소, 새와 같은 짐승들은 종마다 이 세상을 다른 빛으로 인식한다. 식물들은 세상을 어떻게 파악하는지 우리는 아직 알지 못하고 있다.
이 점은 소리나 냄새, 맛이나 촉각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해당된다. 내가 강아지를 쓰다듬을 경우에도 온 몸이 털로 가득 덮인 그가 느끼는 나의 손길과 내가 그를 느끼는 감촉이 서로 많이 다르다.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의 손을 잡고 산책을 하는 경우에도 아이가 나의 손을 느끼는 것과 내가 그의 손을 느끼는 것이 서로 많이 다르고, 내가 그를 바라보며 갖는 생각과 그가 나를 바라보며 갖는 생각에는 훨씬 더 많은 차이가 있다. 그에게는 세상의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하며 손에 잡힌 어른의 손이 엄청나게 크고 듬직하여 자신을 믿고 맡길 수 있다. 나에게는 그의 생기발랄하고 순진하며 귀여운 모습이 너무나 좋아 계속 잘 자라도록 보호하고 싶은 사랑과 연민의 정이 인다.
이렇게 우리는 객관의 세계를 인정해야 하면서도, 우리 각자가 가진 이 객관의 세계에 대한 생각은 나의 주관의 세계 안에서 재구성된 나만의 세계란 것을 좀 더 깊이 생각해 보아야겠다. 그러면 이 세상에 왜 이렇게 많은 의견 차이와 갈등들이 있는가에 대해 좀 더 이해하게 되고, 그것을 어떻게 풀어나갈 수 있겠는가에 대한 생각을 좀 더 정확하고 효율적으로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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