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당에서 24시간 재택근무(?)를 하는 본당신부에게는 물리쳐야 할 유혹이 있다면, 그것은 한낮이면 슬금슬금 밀려드는 「낮잠에 대한 유혹」. 더욱이 요즘처럼 춘곤증이 밀려오는 나른한 봄날엔 더더욱 그 낮잠의 유혹은 집요하다.
그래서 가끔씩 낮잠을 자게 된다. 그러나 낮잠을 자고 난 후의 그 찜찜한 느낌이란…. 낮잠 덕분에 몸은 분명 새털만큼 가볍건만, 마음은 전혀 근거 없는 어떤 「죄의식」으로 기분이 찜찜해진다.
이 아까운 시간 운동이라도 할 걸, 괜히 아까운 시간을 낭비했다란 생각…. 뭐 오랜만에 낮잠 한 번 잔 것이 무슨 큰 잘못이겠느냐라고 스스로 위로를 해보지만 남들은 개미처럼 부지런히 일하는 시간에 나 혼자 게으른 베짱이가 된 것 같은, 뭔가 불안한 마음은 여전히 남는다.
왜 그런 것일까? 오랜만의 그 달콤한 낮잠을 달콤하게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씁쓸하게 느껴야 하는 이유는 뭘까? 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사람이 넉넉해지고 느긋해져야할텐데, 나는 왜 나에게 주어진 그 한낮의 여유를 즐기지 못하고, 도리어 이토록 왜 안달하면서 불안해하는 것일까?
우리는 옛날 초등학교 바른생활 교과서에서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베짱이는 삶을 낭비하는 한심한 족속이요, 근면성의 상징인 개미가 우리 삶의 표본인 것처럼 「강요된 이념」을 교육받으면서 자라왔다. 「경제성장」이란 깃발을 꽂아놓고, 눈에다 눈가리개를 씌운 경주마처럼, 앞뒤 한눈 팔지 못하도록 「여유와 쉼」을 차압당한 채, 그저 앞만 향해 쉼없이 달려왔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쉬는 시간이 오히려 불안해지고, 달콤해야 할 휴식이 오히려 씁쓸하게 느껴지고, 잠시도 가만있지를 못하고 다 본 신문이라도 뒤적이고, 방에 들어오면 우선 리모컨부터 눌러야만 마음이 안정되는 조급증에 걸리게 된 것은 아닐까?
이렇게 나 스스로 조급증이 생길 때, 요즘의 난 일부러 느림보 「달팽이」 생각을 많이 한다. 느림보의 대명사처럼 불리는 「달팽이」…. 그러나 달팽이가 지나간 자리에는 언제나 어김없이 움직임의 흔적이 남는다. 달팽이는 느리기 때문에, 또 온몸으로 걸어가기 때문에, 그의 지나간 흔적을 남기는 것이다.
순식간에 빠르게 지나가는 것에는 그의 흔적이 남지 않는다. 때문에, 순간적이고 찰라적인, 그리고 감각적인 요즘 세태에는 오히려 더 온몸으로 걸어가는 이 달팽이의 「느림」이 더 필요한 것은 아닐까.
그래서인지 언제부턴가 쏟아져 나오는 여행의 경험을 담은 책들을 보더라도, 제트 비행기 타고 전세계를 누비고 다닌 여행 이야기보다, 느리지만 두 발로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을 돌았다는 이야기나 손수 자신의 다리 힘으로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전국을 순례한 자전거 여행 이야기나, 땅의 숨결을 느끼며 손수 발로 걸었다는 여행기들이 더 우리들 가슴에 와 닿는 게 아닐까 싶다.
요즘 주변에서 자신의 몸을 못살게 굴면서, 자기 몸에 쌓인 지방질 해소를 위해 열심히 운동도 하고, 어떻게든 늘어나는 체중을 줄여보려고 먹는 것까지도 억제하면서 다이어트에 열중인 사람들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이렇게 내 몸을 가만 놔두지 않고, 단련시키고, 못살게 구는 것은 결국 내 몸이 「퍼지지 않도록」, 계속 「긴장상태를 유지하도록」 하는 것일텐데, 이렇듯 「퍼지지 않도록」 가만 놔두지 않는 것이 우리 몸을 돌보는 일이라면, 반면에 우리의 영혼이나 정신세계를 돌보는 일이란 것은, 반대로 우리 영혼이 마음껏 「퍼지게 하는 것」…. 맘껏 「긴장을 풀고」 자유로울 수 있도록 만드는 것…. 이런 것이 우리 영혼을 돌보는 일이 아닐까 싶다. 영어를 써서 안된 일이긴 하지만, 『육체는 타이트하게(tightly), 대신 영혼은 릴렉스하게(relax)』, 『내 몸뚱이는 퍼지지 않도록, 그러나 내 영혼은 맘껏 퍼질 수 있도록』 이것이 현대를 사는 우리한테 꼭 필요한 말이 아닐까 싶다.
글쎄, 시간이 허락한다면 이 날씨 좋은 봄날, 자동차를 놔두고, 빠름을 접어두고 배낭 하나 달랑 짊어진 채로, 일부러 「느림」을 찾아 떠나고 싶긴 하지만, 그러나 이미 인터넷 접속 때만 보더라도, 초기화면이 뜨기까지 몇 초 안되는 그 시간을 참지 못해서 「보다 더 빠르게」를 추구하다보니 최신의 인터넷 기술력을 갖추게 된 우리가 과연 그 「느림」을 견뎌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또 이미 어디든 놀러갈 때도 휴대전화 충전기는 꼭 챙겨야 하고, 호텔에 도착해서도 인터넷 접속이 가능한지를 먼저 따질 정도가 되어버린 우리 현실이 과연 이런 여유로움을 허락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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