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을 기점으로 우리 사회에는 21세기의 새로운 흐름들이 감지되고 있습니다. 지난 유월 월드컵 축제 때 분출되었던 W세대의 열기는 스포츠의 영역에만 머물지 않고 대선의 흐름마저 역류시킬 정도로 엄청난 힘을 발휘했습니다.
이후 그들은 촛불시위를 통해 탈냉전의 새로운 역사적 흐름까지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이처럼 밀려오는 새로운 물결 앞에서 개혁을 외치는 젊은이들은 열광하고 있으며, 안정을 원하는 기성세대들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합니다. 이 흐름은 분명 구시대와는 다른 어떤 변화의 동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저는 그 동력의 뿌리가 21세기의 새로운 의사소통방식에 있다고 봅니다. 이 새로운 소통방식의 흐름은 인간관계와 사회관계를 조직해나가는 새로운 방식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인터넷을 통해 소통하지만 온라인 상에 감금되어 있지 않고 현장에서도 그 힘을 발휘합니다. 네트워크 상에서 그들은 차별이 없는 평등성을 지닙니다. 이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에서는 높은 자도 없고 낮은 자도 없으며, 장유유서(長幼有序)의 질서도 없습니다. 서로간의 공감대 형성이 관건입니다. 이전 시대와는 다른 이러한 행동과 사고의 패러다임을 주도하는 것은 디지털 문명의 덕분입니다. 현재 한국 사회는 아날로그 시대와는 뚜렷이 대비되는 디지털 사고와 디지털 행동이 「패턴」으로 형성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근본적으로 사회문화의 패러다임을 바꿔놓고 있습니다.
21세기의 새로운 변화의 움직임은 앞으로 교회 안에도 많은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듯이, 시대적 변화는 복음선포의 방식도 변화되길 요구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된 이유는 그가 시대적 변화를 잘 읽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습니다. 즉, 이 시대 지도자는 사회의 밑바닥에서 움직이는 잘 보이지 않는 갈망까지 제대로 읽어내야 한다는 것이지요.
서울대교구의 시노드 본회의가 개막되었습니다. 시노드는 현시대의 흐름 안에서 적합한 사목의 방향을 설정하기 위해 교구장에게 교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의견을 제안하는 장입니다. 그러니 시노드의 승패여부는 교회구성원간의 의사소통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겁니다. 막혀있던 언로(言路)를 트고, 하느님의 진리를 「지금, 이곳에서」 실현하기 위해 우리 모두의 지혜를 모아야겠습니다.
그러면서도 인간적 지혜에 머무르지 않고 성령의 이끄심에 온전히 신뢰하면서 하느님의 진리를 찾아나서는 여정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 안에는 쌍방간의 자유로운 의사소통의 흐름이 막혀 있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신자들은 신부님 앞에 주눅들고, 신부님들은 주교님 앞에 주눅든 모습을 보여줍니다. 본당수녀님은 본당신부님 앞에서 제대로 이야기하지 못하고, 보좌신부님은 본당신부님 앞에서 자신의 의견을 솔직하게 말하지 못합니다. 상명하달의 의사소통구조가 곧 하느님께 대한 순종인양 자주 위장되곤 합니다.
작년 가을 「소공동체와 레지오의 관계정립」을 위한 심포지움의 자리에서 한 논평자가 말했습니다.
『소공동체와 레지오의 갈등은 서로간에 의사소통을 하지 않은 데서 비롯되었다. 서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면서 풀어나간다면 아무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옳은 지적입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의 문제는 서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신자들은 신자들끼리 있을 때는 말이 많지만, 정작 신부님 앞에 가면 아무도 입을 열려고 하지 않습니다. 서로의 의견을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라 신부님의 의향대로 신자들은 맞추어가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의사소통방식은 이제 구시대의 잔재로 여겨지고 시대의 흐름에 뒤떨어진 퇴보로 비춰집니다.
작년 한해동안 저는 선교?신앙교육 준비위원회에서 의안을 함께 준비해왔습니다. 「전신자 의견수렴」을 통해 의안을 선정했을 때 신앙교육에 대한 신자들의 갈망은 참으로 크게 나타났습니다. 그러한 갈망을 「하느님의 진리에 대한 목마름」으로 이해해도 좋을 듯합니다. 신앙의 진리를 제대로 이해하고 실천하기 위해 신자들은 과거와는 다른 방식의 교육을 원하고 있습니다. 논리적으로 빈틈없는 교리지식이 아니라, 영성적으로 성숙된 삶을 갈구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자유로운 의사소통의 구조가 구축되지 않은 우리 교회의 현실을 볼 때, 시노드는 단순한 말잔치가 아니라 교회의 밑바닥에서 드러나지 않게 움직이고 있는 갈망을 잘 읽어내야 할 것입니다.
신자들의 이러한 갈망을 잘 읽어내고 그들이 하고 싶은 말을 쏟아낼 수 있도록 분위기를 형성해 나가는 것이 참으로 중요할 것입니다. 의사소통이 막혀있는 곳에서는 변화의 물결도 일어날 수 없고 그 막힘은 엉뚱한 방향으로 분출될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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