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TO 가입 후 중국 전역은 영어 붐이 일고 있다고 한다. 위대한 문학가인 노신의 출생지로 잘 알려진 소흥(紹興)의 유일한 성당인 「팔자교 천주당」의 중국인 신부님과 수녀님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곳에서 살고 있는 지인에게 들은 지난 이야기 하나.
작년 10월 초, 주일 미사를 드리고 나오는데 지아 수녀님께서 그에게 다가와 조심스런 표정으로 영어를 가르쳐 줄 수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최근에 부쩍 늘어난 미사 참여 외국인들에게 간단한 인사말이라도 건네고 싶다는 게 그 이유였다.
『주님의 뜻대로 따르게 하소서』
당시 이 기도 제목으로 기도를 하면서, 12월 말까지 철수하느냐, 계속 남아 중국에서 성공한 한국인 사업가가 되느냐로 고민을 하던 때였다. 헌데, 강의 요청이라니. 유창한 중국어 실력 덕분에 현지인과의 의사소통에 별 무리가 없었지만, 중국어로 영어를 가르친다는 일은 난감한 일이었다.
복잡한 개인 사정이 정리된 후에나 결정하겠노라고 얼버무렸지만, 귀찮은 일거리를 만들 필요가 없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러나 지아 수녀님은 물러서지 않고,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좋다며 떼 아닌 떼(?)를 썼다. 간청에 못 이겨, 월 1회가 아닌 매주 3회의 강행군이 시작되었다.
시작 시간 30분 전, 다섯 분 전원이 출석해서 진지한 표정으로 강의를 경청했다. 그는 좀더 쉬운 강의를 위해 좋은 책을 구하러 다녔고, 강의가 있는 날은 딴 마음을 쓸 겨를이 없었다.
12월, 평안야(平安夜 : 크리스마스 이브의 중국식 표현)에 맞춰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영어로 가르쳐 드렸다. 순백한 소년소녀들처럼 그 곡을 어찌나 좋아하는지, 이후로는 강의를 마치고 「고요한 밤 거룩한 밤」 부르는 걸 빼놓지 않았다.
2003년 1월 17일 인사이동으로 더 이상 영어를 가르칠 수 없게 되었다. 마지막 수업을 마치고, 신부님과 수녀님들과 예의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함께 부르던 그의 가슴 한 켠이 뭉클해지고, 눈앞이 흐려졌다. 주님은 이미 지난 해 10월 초, 지아 수녀님을 통해 그의 기도에 대한 응답을 해 주신 것임을 불현 듯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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