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이 지나고부터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눈이 부시다. 눈이 부실뿐만 아니라, 벌써 봄의 기운마저 감지된다. 동지 이후, 날마다 노루 꼬리만큼 길어지는 햇빛이 바람, 하늘색, 구름의 모양새를 미세하게 바꾼다는 것을 온몸이 먼저 알아채는 것이다.
남보다 계절을 한두 달 먼저 느끼는 버릇은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에 생겼다. 윗목에 떠놓은 자리끼가 얼어붙고, 문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황소바람을 막기 위해 막아놓은 문풍지 소리가 한밤 내 잠을 설치게 하던 한겨울. 벽지에 성에가 반짝이처럼 내려도 우리들의 놀이는 그칠 줄 몰랐다. 따뜻한 양지쪽에서 언 손을 호호 불어가며 고무줄 놀이, 망치기, 삔따먹기 등등을 하고 놀면 그깟 추위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1월 중순의 어느 날, 멀리 세워놓은 돌멩이를 일격에 쓰러뜨리기 위해 금 위에 올라선 나의 눈에 새로운 그림이 들어왔다. 어느 틈에 지붕의 그림자가 돌멩이를 가리우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만 어쩐 일인지 눈앞이 아득해지고, 가슴은 알싸함으로 가득해졌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푸른 하늘에 정오의 햇살이 낚시줄처럼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그 날 이후, 한겨울의 칼바람 속에 숨어있는 봄을 느끼는 이 특별한 감성을 종종 주변 사람들에게 이야기할라치면, 어김없이 고개를 갸우뚱거리곤 한다. 그런들 어떠랴. 온전히 내가 느끼는 나만의 기쁨인 걸.
헌데, 요즘 묵주기도를 드리면서 꼭 어린 시절과 같은 설레임을 경험한다. 묵주 기도를 처음 시작하는 첫 번째 기도 때에 지향하는 것들이 계절 속에 숨어있는 또 하나의 계절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간절한 소망이나 희구가 설령 바라는 바처럼 내게 찾아오지 않았다 하여 안타까워하거나 의심하지 않는다. 겨울의 씨앗 속에 숨어있는 봄의 열매가 언젠가 내게 찾아오리라는 희망을 잃지 않고, 오늘도 햇살 내리는 창가에서 묵주기도를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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