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비엔나에서 공부하고 있었을 때 필자의 지도교수 신부님이 책임자로 있는 스테파누스 하우스라는 집에서 17명의 신부님들과 함께 생활했다. 매일 아침 함께 미사를 드리고 식사를 하면서 우리는 상당히 친해졌다. 특수 사목을 하는 몇몇 현역 신부님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은퇴하신 연로한 신부님이어서 마음의 여유가 있었다. 그래서 때로는 깊은 대화를 하기도 했고, 재미있는 유머를 소개하면서 재미있어 하기도 했다.
중국은 서양사람들에게도 비교적 큰 관심의 대상이 되는 나라이어서 당시 가끔 화제에 떠오르곤 했다. 언젠가 다시 중국이 화제의 대상이 되어 필자가 중국 사람들이 자기 나라를 중국이라고 하는 이유에 대해 『자기들이 온 세상의 중심이라고 생각하여 중국이라고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자 헝가리 출신의 한 할아버지 신부님께서 『무슨 소리를! 중국이 어째서 세상의 중심이야. 우리 헝가리가 세상의 중심이지!』라고 하셨다. 농담으로 듣기에는 그 신부님의 어조가 진지하고 강했다. 헝가리 사람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은 처음이라 필자는 당시 다소 재미있어 하면서 『지구에서 매우 작은 나라에 속하는 헝가리가 무슨 중심이냐, 과장이 심하다. 중국은 그런 생각을 가질 만큼 크지 않느냐?』와 비슷한 말로 대화를 계속했다. 그 후 이 지면에 이 이야기를 소개할 만큼 그분의 말씀은 필자의 기억 속에 깊이 남아 있다. 당시 헝가리가 아직 공산국가였고 그 신부님은 망명하여 외롭게 살고 있던 터라, 조국에 대한 그분의 애정에 나의 연민의 정이 함께 했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그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공간에 대해서도 깊이 관찰해 보면 상당히 재미있는 현상들을 발견할 수 있고, 공간에 대한 우리의 생각과 입장이 어떠한가에 대해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그러면 우리가 살아가는 삶에서 좀 더 자유롭고 깊이 있는 삶을 살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지금 이 순간에 나는 나의 공간 안에 있다. 앞에서 잠시 언급한 대로 나 자신이 공간적인 존재이다. 나의 몸을 비롯하여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들이 공간적인 존재이다.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면 어제와 같이 오늘도 저렇게 넓고 높고 듬직하게 있고, 저 멀리 산들이 줄지어 서 있으며, 길과 무수한 집들과 사람들이 있고, 이 방에 내가 이렇게 있다. 이들이 마치 언제나 이렇게 있었고 앞으로도 이렇게 있을 신성불가침의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들의 존재에 대해 기정 사실로 생각하고 믿고 이들에 맞추어 우리의 삶을 엮어 가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우리의 자세는 건강한 상식에 기초를 둔 것으로써 옳고 계속 유지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 좀 더 세밀히 관찰해 보면, 언제나 이 모습 이대로 있는 것이 당연하게 생각되는 공간이 상당히 재미있는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비록 공간에 대한 우리의 좀 더 깊은 관찰이 공간에 어떠한 변화도 가져올 수 없고 관찰하기 이전이나 이후나 객관적 결과는 같을지라도, 그 같은 공간에 대한 주관적 자세에는 상당한 변화가 있을 것이다. 호기심과 인내심을 가지고 좀 더 파고들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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