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
제 생일이거나 무슨 다른 특별한 날이 아니었어요.
우리는 지난밤 처음으로 말다툼을 했지요.
그리고 그는 잔인한 말들을 많이 해서 제 가슴을 아주 아프게 했어요.
그가 미안해하는 것도, 말한 그대로를 뜻하지 않는다는 것도 전 알아요.
왜냐하면 오늘 저에게 꽃을 보냈거든요.
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
우리의 결혼기념일이라거나 무슨 다른 특별한 날이 아닌데도요.
지난 밤 그는 저를 밀어붙이고는 제 목을 조르기 시작했어요.
마치 악몽 같았어요.
정말이라고 믿을 수가 없었지요.
온몸이 아프고 멍 투성이가 되어 아침에 깼어요. 그가 틀림없이 미안해 할거예요.
왜냐하면 오늘 저에게 꽃을 보냈거든요.
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
그런데 어머니날이라거나 무슨 다른 특별한 날이 아니었어요
지난 밤 그는 저를 또 두들겨 팼지요.
제가 그를 떠나면 저는 어떻게 될까요?
어떻게 아이들을 돌보고?
돈은 어떻게 하구요?
저는 그가 무서운데 떠나기도 두려워요.
그렇지만 그는 틀림없이 미안해 할거예요.
왜냐하면 오늘 저에게 꽃을 보냈거든요.
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
오늘은 아주 특별한 날이었어요.
바로 제 장례식 날이었거든요.
지난 밤 그는 드디어 저를 죽였지요.
저를 때려서 죽음에 이르게 했지요.
제가 좀더 용기를 갖고 힘을 내서 그를 떠났더라면
저는 아마 오늘 꽃을 받지는 않았을 거예요』
(작자 미상)
여성의 문제로 폭력과 빈곤을 가장 먼저 꼽습니다. 올들어 신문지면에 등장한 가정폭력의 사례들을 보면, 우리 시대 그것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알 수 있습니다.
아버지의 상습적인 폭력에 시달려온 아들이 강도로 위장하여 잠든 아버지를 야구방망이로 때려 숨지게 한 사건이 지난 1월 28일에 있었는가 하면, 최근 한 연예인이 남편의 폭력으로 갈비뼈가 부러지는 사건이 매스컴에 오르내리기도 했습니다. 아버지를 죽인 아들은 구치소에 면회 온 어머니에게 『어머니, 편안하시죠? 저도 편안합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아버지로부터 30년간 신체적, 정신적 피해를 입고, 존속살해범이 되어서야 비로소 그는 편안해질 수 있었습니다.
흔히 『부부싸움은 칼로 물베기』라느니, 『여자가 맞을 짓을 했으니까 맞으면서 살지』라는 말로 가정폭력의 심각성을 무마시키곤 합니다. 그러나 그 폭력이 한 여성뿐만 아니라 자녀들의 몸과 마음을 망가뜨리며 종국에는 죽음까지 초래할 수 있음을 생각한다면, 『여성의 권리는 인권』이라는 말이 새삼 강조될 필요가 있습니다.
성서본문에서도 우리는 폭력에 희생당한 여성의 이야기를 접할 수 있는데, 레위인의 첩 이야기는 그 중 가장 극심한 성폭력의 예화로 꼽힙니다(판관 19∼21장).
이름이 전해지지 않고 단순히 레위인의 첩으로만 알려진 이 여인은 남편과 함께 친정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기브아에 묵게 되었습니다. 밤중에 기브아에 사는 무뢰배들이 들이닥치자 레위인은 첩을 그들에게 내어주었고, 그 여인은 밤새 무뢰배들에게 겁탈당한 다음 문 밖에서 홀로 죽어갔습니다. 다음날 아침 레위인은 첩을 싣고 집으로 돌아가서 그 시체를 열두 토막 내어 각 지파에 한 토막씩 보냈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이스라엘 전쟁이 시작되고 열두 지파의 동맹이 형성되는 이스라엘 역사가 전개됩니다. 여성의 입장에서 그 성서본문을 대하면 레위인의 첩이 당했을 그 고통이 생생하게 기억되고 여성을 억압하는 인간 역사에도 눈뜨게 됩니다.
그리고 폭력으로 희생당한 여성들의 이야기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여성에 대한 폭력은 그 옛날 이스라엘 판관시대에나 있었던 과거의 일이 아니라, 지금, 이 땅에서도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 현재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교 신앙에 입각하여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아내는 가정을 지키고 자녀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면서 남편에게 죽기까지 순종해야 하는가? 아니면 여성도 하느님의 모습을 지닌 고귀한 존재로서 스스로의 존엄성을 지켜나가야 하는가? 여성들이 당한 슬픈 억압의 역사를 그대로 덮어둘 것인가? 아니면 그 여인의 고통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그러한 불행이 더 이상 생겨나지 않도록 함께 노력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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