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교구는 지난 19일부터 「올바른 생명윤리법 제정 촉구 서명운동」을 시작하였다. 정부가 부처간 합의로 마련한 법률안이 난치병 치료라는 미명아래 어쩔 수 없이 체세포 핵이식의 방법을 통한 인간 배아 복제를 허용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고 심지어는 동물의 난자에 인간의 체세포를 이식하는, 일종의 이종간 교잡행위까지도 허용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는 이 법안이 국회를 통과한다면 우리 사회는 죽음의 문화 속으로 더욱 깊이 빠져들 것이라는 교회의 심각한 우려의 반영이다. 치료용 배아를 만든다는 것은 존엄성을 지닌 인간을 한낱 물질로 격하시키는 행위이며, 난치병 치료를 위해서는 그 모든 것이 다 허용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결국 우리 사회를 유용성과 눈에 보이는 가치만을 최상의 것으로 평가하는 병든 사회로 변질시키고 말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 기술은 결국 수많은 복제인간의 양산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데에도 추호의 의심도 없다.
교회가 이처럼 생명윤리법안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고 정부안에 대해 적극적인 반대의 입장을 표명하는 것은 국가의 실정법이 국민의 윤리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국가의 실정법은 존중되어야 할 윤리적 가치와 그 의무에 대해 절대로 무관심 할 수 없다. 인간의 인간다운 삶, 인간의 존엄성, 생명의 존중, 인권의 보호 등 인류 보편의 가치들을 수호하기 위한 공권력의 임무는 그야말로 중차대할진대 공권력의 수호자인 법이 이러한 보편 가치들을 경시하고 오히려 반생명적 음모를 부추기게 된다면 이는 국가의 존립과도 매우 밀접히 관련된다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한 사람의 온전한 인격체로 마땅히 존중받아야 할 인간 배아를 한낱 도구로 격하시키려는 정부의 시도는 매우 중대한 윤리적 오류임에도 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오히려 법률안 제정을 통해 국민 전체를 오류 속으로 몰아넣고자 하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1973년부터 시행된 모자보건법을 기억한다. 이 법은 우리 사회를 죽음의 문화 속으로 몰아넣은 대표적 악법이다.
낙태를 허용할 수 있는 범위를 법적으로 정해놓았지만 결국 이 법의 시행과 함께 우리나라는 연간 150만건 이상의 낙태가 이루어지는 낙태천국이 되지 않았는가? 그런데 더욱 심각한 것은 그렇게 낙태를 하면서도 죄의식조차 없는 윤리적 불감증이 온 국가를 뒤덮고 있다는 것이다.
법이 허용하는 것은 윤리적으로 허용된다는 의식은 일종의 사회학주의적 현상이다. 뒤르껭이라는 사회학자는 모든 인간 현상과 행동을 사회학적 도식으로 설명하는데 사회로부터 형성된 집단양심은 사회의 각 구성원 개인의 개인양심을 형성함으로써 사회가 개인의 윤리생활까지 규정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 사회에서 보는 현상이 바로 이러한 현상이다. 법이 낙태를 허용하기 때문에 낙태 역시 윤리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고, 법이 인간을 생물학적 도구로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면 인간 역시 하나의 물질로 취급될 수도 있다는 반(反)윤리가 당연한 행동규범이 되는 것이다.
사실상 생명윤리법의 제정은 우리 사회의 매우 긴급한 과제이다. 그러나 이 법이 정부가 마련한 법처럼 인간을 비인간화시키는 법이라면 이러한 시도는 당장 중단되어야 한다.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고 인간 생명을 귀중히 여기고, 나아가 과학과 기술이 언제나 인간을 위해서 발전해야 한다는 대전제가 생명윤리법의 기초가 되어야 한다. 서울대교구가 시작한 「올바른 생명윤리법 제정 촉구를 위한 서명운동」은 이러한 노력의 등대 역할을 할 것이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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