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변의 보통 신자들 가운데서 하느님은 무서운 분이라고 느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자신도 더러는 하느님을 무섭다고 느끼고 언젠가는 만나뵈어야 할 때를 생각하면 두려울 때가 있다. 「하느님이 무섭다」는 것이 우선 경외하는 마음은 뒷전에 두고, 단순한 무서움을 갖는 것이라는 데서 한번쯤은 짚어 볼 문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하느님은 사랑이 넘치시고, 자비하신 분이라는 것은 너무나 잘 알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하느님을 자꾸 무서운 분으로 생각되어지는 즉, 하느님을 무서운 분으로 느끼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주일도 잘 지키면서 나름대로 열심히 봉사도 하고, 남 보기에는 별로 나무랄 데 없는 사람이지만 자신은 항상 모자란다고 생각하는 사람, 세상살이가 힘들다 보니 항상 하느님의 가르침대로 다 살지를 못하고 때로는 주저앉기도 하는, 그런 삶을 사는 사람 가운데 하느님이 무섭게만 생각되어 가까이 나아가기를 두려워하는 경우가 많다.
하느님은 우리가 「하느님 아버지」라고 부르는 그대로 아버지와 같은 분이심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자식들에게 한없이 너그럽고 인자하시며, 사랑도 깊으시지만 자식이 잘못하면 엄하게 꾸짖으시는 아버지!
하느님도 이와 같은 분이심을 잘 알고는 있으면서도, 하느님을 인자하시고 사랑깊으신 아버지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잘못에 대해 엄하게 벌하시는 무서운 아버지로만 생각되어지는 것이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자신이 자주 넘어지기 때문에, 자주 지쳐서 게으름을 피우기 때문에, 넉넉하지 못한 살림살이에 허덕이다 보니 미쳐 이웃을 생각하지 못하고 산다는 죄책감을 갖고 사는 그저 보통 신자들은 그 죄책감으로 해서 「심판」이 두렵고, 심판자로 오시는 주님이 무서운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교회가 신자들에게 죄짓지 않도록 경계하기 위해 죄에 대한 하느님의 준엄한 심판을 너무 강조함으로써 신자들에게 「하느님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분」으로 보다는 「죄를 심판하고 벌주시는 분」으로 각인 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일 것이다.
하느님을 무섭게 느끼면 어떻게 될까? 우리가 어릴 때의 아버지에 대한 생각을 두고 한번 생각해 보자. 아버지가 아주 무서운 분으로 생각되면 잘못을 저질렀을 때 아버지 앞에 나아가 잘못을 말씀드리고 용서 청하기가 어려워진다. 그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아버지 가까이 가기를 꺼리게 되고 자연 아버지와 거리가 멀어지게 된다.
우리와 하느님과의 관계에서도 이러한 현상이 일어날 수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나는 50여 년 전 초등학교 시절에 들었던 우화 한 토막이 생각난다. 이 세상에서 온갖 나쁜 짓을 다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어느 날 거미 한 마리가 자기 머리에 내려앉는 것을 잡아서는 죽이지 않고 살려 보냈다고 한다. 이 사람이 죽어 저승에 갔는데 그 사람은 당연히 지옥으로 가게 될 것인데도 하느님께서는(그 때 나는 하느님을 몰랐다) 그를 보시고 그가 이세상에 있는 동안 착한 일을 한 것이 없는지 알아보고서는 거미를 죽이지 않은 것도 착한 일로 인정하여 그 작은 착한 일 하나로 크고 많은 죄를 불문하고 천당의 거미를 시켜 거미줄을 내려 보내 그를 천당으로 데려왔다는 것이다.
이 우화를 생각하면서 하느님은 우리들을 벌 주려고 우리들의 죄를 들추어내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를 구원해 주시기 위해 우리들이 행한 작은 선행이라도 알아보시는 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현실적으로 영성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많은 신자들에게 좌절을 주지 말고 작은 선행이라도 구원의 길이 된다는 희망을 주면 어떨까? 이들에게 『하느님이 작은 선행도 기뻐하시는데 하물며 큰 선행은 얼마나 기뻐하시겠느냐?』고 하면 큰 위로가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사순시기를 맞아 하느님 말씀을 이렇게 묵상하면 어떨까?
『나는 인간적인 십자가상의 고통을 받아들이면서 너의 회개를 갈망하고 있는데, 너가 나중에 내 앞에 왔을 때 내가 너를 구해 줄 아무런 이유를 찾지 못하여 구원해 주지 못하면 내 마음이 얼마나 아픈지 너는 알겠느냐? 나는 심판자가 아니다. 나는 구원자다. 나는 사랑이고 자비의 하느님이지만 네가 회개하지 않고 준비하지 않으면 나도 너를 나의 나라로 데려올 수가 없구나. 어쩌면 좋으냐? 이 준비는 너가 해야 하는 것을!』
그리고 이렇게 응답해 보자. 『하느님 당신을 믿습니다. 당신의 말씀을 믿습니다. 저는 죄를 짓지 않고는 살지 못하는 미약한 존재이옵니다. 다만 저의 죄를 슬퍼하고, 슬픔으로 해서 흘리는 눈물로 저의 죄를 씻는 보속의 길을 찾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러나 잘 할 것 같지 않습니다. 당신께서는 어차피 저의 구원을 원하시는 분, 이 보속의 길을 걸어가는 것까지도 도와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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