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내가 현재 있는 방을 둘러보자. 나에게 이 공간의 모습은 어떠한가? 책상 앞에 앉아 있을 때의 공간과 일어나 서 있을 때의 공간 그리고 바닥에 누워 있을 때의 공간이 각기 조금씩 다르다. 내가 있는 방에 한 사람이 더 있다면, 그에게 있어서의 이 방의 공간은 나에게 있어서의 이 방의 공간과 똑같지 않다. 이제 일어나서 걸어 보자. 공간이 움직이면서 모습이 계속 변한다. 이러한 나를 관찰하는 다른 사람에게 있어서의 공간도 자꾸 변한다.
이제 해가 지고 어둠이 깔려 방안이 깜깜하다고 생각하자. 그러면 같은 방에 있어도 낮에 보던 것과 같지 않다. 촛불을 하나 켜 보자. 어두울 때보다 공간이 갑자기 커 보인다. 그 촛불을 들고 방안을 이리저리 걸어 보자. 공간이 나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때 공간의 중심은 촛불을 들고 있는 나 자신이다. 눈을 한 번 감아 보자. 공간이 어디 갔는지 없고 어둠 속에서 자의식을 가진 나 자신이 느껴질 것이다.
이제 바깥에 나와서 서 보자. 주변에 공간이 펼쳐져 있다. 길을 따라 걸어 보자. 나의 걸음에 따라 공간이 서서히 바뀌어 간다. 차를 타고 달리는 경우의 공간은 지금과 또 다르다. 파도를 가르며 달리는 배를 타고 맞이하는 공간은 또 다르다. 비행기를 타고 하늘 높이 올랐을 때의 공간은 많이 다르다. 우주선을 타고 더 멀리 나가 본 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그곳에서의 공간에 대한 느낌은 매우 다르다. 우선 아래위가 없고 동서남북도 없다. 이것은 지상이나 지구 중력권에 있을 때에만 있는 개념이다. 우주에서는 그냥 공간 속에 자신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이렇게 다양한 공간들 안에서 항상 같은 공통점이 하나 있다. 그것은 이 공간들의 중심에 언제나 내가 있다는 것이다. 나는 나의 공간의 중심이고 주인공이다. 내가 어디서 무엇을 하든 나의 공간은 언제나 나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이것은 우주선을 타고 지구의 대기권 바깥으로 나가도 마찬가지이다. 이것을 체험한 유진 서넌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우주선 밖으로 나갔을 때 비로소 자신의 눈앞에 우주 전체가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우주라는 무한한 공간의 정 중앙에 자신이라는 존재가 던져져 있다는 느낌이다』
시간이 언제나 현재, 이 순간의 나를 중심으로 과거와 미래로 연결되어 있듯이, 공간 역시 나를 중심으로 이 땅과 우주 안에 펼쳐져 있다. 나를 떠난 공간에 대해 나는 상상은 할 수 있지만, 실제로 체험할 수는 없다. 이런 의미에서 공간은 나의 인식과 큰 관련이 있고, 나의 지능, 심리상태, 육체적 건강 상태, 체구의 크기 등과 관련이 있는 존재이다. 같은 크기의 집이라도 키가 작은 어린아이에게와 큰 어른에게 다르게 보인다. 같은 길이의 거리라도 나의 건강상태가 양호할 때와 나쁠 때 다르게 다가온다.
이런 측면에서도 우리 각자는 자신의 삶의 주인공이다. 다른 사람의 공간을 내가 대신 체험할 수 없고, 그가 나의 공간을 대신 체험할 수도 없다. 내가 가진 공간은 나만의 공간이고, 다른 사람은 그만의 공간을 가지고 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삶의 주인공이고 매우 소중한 존재이다. 그래서 각자는 하나의 소우주이기도 하다. 우리가 공유하는 공간과 인식이 대단히 많기 때문에 서로 이해하고 협력하면서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서로의 공간과 인식을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주어진 삶을 기쁘게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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