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면 예수님은 참으로 파격적인 분이었다. 공생활에서 보이신 언행은 요즘 눈으로 보면 기가 막힐 일들이 하나둘이 아니다.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시몬 베드로와 안드레아,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 형제를 데려가실 때를 보자.
『예수께서 그들에게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 하시자 그들은 곧 그물을 버리고 예수를 따라 갔다. … 그들은 자기 아버지 제베대오와 함께 배에서 그물을 손질하고 있었다. 예수께서 그들을 부르시자 그들은 곧 배를 버리고 아버지를 떠나 예수를 따라 갔다』
베드로는 결혼한 사람이었다. 또 야고보와 요한은 아버지와 함께 고기를 잡아 생활하는 사람들이었다. 다 집안의 기둥 같은 존재들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낯선 사람이 와서 부르자 그물이며 배를 팽개치고 아버지도 놓아두고 따라가 버리는 것이 아닌가. 가정 파괴범이 따로 없다.
게다가 말씀은 공격적이며 파괴적이다.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아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자기 부모나 처자나 형제자매나 심지어 자기 자신마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내 편에 서지 않는 사람은 나를 반대하는 사람이며,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헤치는 사람이다』
예수님의 이런 낯선 말과 행동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고 현세에서 인간의 해방을 선언하셨다.
율법이 정한 계율이라는 이름으로 사람을 짓누르던 부당한 굴레에서 벗어나고, 가난한 이, 소외당하는 이, 억눌린 이들도 하느님의 자녀로서 살아갈 권리가 있음을 밝혀주셨다. 그리고 이교도도, 사마리아인도, 세리도, 창녀도 예외가 아님을 분명히 알려주셨다. 그것은 커다란 변혁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렇다. 예수님은 기존의 잘못된 삶의 방식, 사유의 방식을 송두리째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하고 계셨던 것이다. 「과격한」언어들은 가진 것을 버리고, 소중한 것들과 헤어진다는 각오가 없으면 그러한 변화를 좇아 구원을 향해 나아갈 수 없음을 경고하는 소리였던 것이다.
권력과 사회의 완고한 지도자들은 그런 예수님을 위협으로 보았고, 결국 십자가에 매달아 사형에 처했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음을 우리는 안다.
우리 사회를 보자. 세계 12위의 무역국, 인터넷 강국, 1인당 국민소득 1만 달러, 월드컵 축구 4강의 신화 같은 화려한 모습이 보인다.
그러나 그 화려함 뒤에는 황량한 벌판이 펼쳐져 있다. 사람들의 삶은 진정한 목표를 잃었고, 물질이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있다. 인간은 가치의 중심에 있지 않다.
대구 지하철 참사는 우리의 음울한 자화상이다. 방화범에게서도, 기관사에게서도, 사령실 근무자에게서도 우리 자신의 얼굴을 본다. 수사의 초동절차인 현장보전조차 하지 않은 경찰, 허술한 안전규정과 그런 차량을 제작해도 되도록 기준을 만들어놓은 사람들도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이다.
우리의 작은 무관심, 방심, 태만이 모여서 비극을 빚어낸 것이다. 그것은 이 사회가 참된 변화를 필요로 하고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사람 몇 명을 처벌하고 규정을 바꾸고 하는 정도로 그쳐서는 안 된다. 그치지도 않는다.
사실 변화의 바람은 이미 불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과연 진정으로 변화를 원하는가. 변화를 받아들이고 좇아서 힘든 길을 갈 각오가 되어 있는가. 개혁을 주장하는 노무현정부가 들어서자 많은 사람들은 불안을 이야기하고 파격을 걱정하며 자질과 역량을 의심하고 있다. 일리 있는 지적들도 있다. 그리고 노대통령은 예수님이 아니다. 그러나 그들의 속내에서 변화에 대한 꺼림도 보는 것은 나 혼자 만일까.
분명한 것은 이 변화의 바람은 노대통령이 일으킨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는 남보다 빨리 느끼고 받아들였을 뿐이다. 불안을 내세우며 그 변화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은 우리 자신을 위하는 길이 아니다.
우려하는 마음 속 깊은 곳에 대사제 가야파가, 율법학자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라고 외치던 군중이 들어 있다면 더더욱 아니다.
그들을 몰아내고 그 자리에 예수님을 모셔야 한다. 이제 우리는 익숙한, 그러나 잘못된 것들과의 결별을 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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