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옆을 지나치는 앳된 젊은 여성을 볼 때마다 내게도 저런 시절이 있었던가 싶어 세월의 무상함에 절로 고개가 숙여지곤 한다. 잔소리 같이만 들리던 어른들의 말씀에 고개가 끄덕여지고 흘러간 옛노래가 더욱 정답게 느껴지는 걸 보니 세월의 흐름은 어쩔 수가 없나보다.
검은 양복에 중절모를 눌러 쓰고 금테 두른 지팡이를 짚고 다니시던 멋쟁이 아버지와 깔끔하고 다정하신 어머니를 보면서 내 부모와 나는 항상 그 모습 그대로 있을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막내인 나를 못 잊어 눈도 못감으신 채 아버지는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나셨고 그렇게 고우시던 어머니는 구십이 넘은 상할머니가 되셨다.
그 강인하기만 하던 성품도 많이 약해지고 깔끔하시던 모습에 추함이 서리는 걸 보면 어머니와의 영원한 이별을 생각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머니도 그런 일을 예상하셨는지 어느날 갑자기 수의를 장만하셔야겠다고 서두르셨다.
남편과 의논 끝에 어머니의 수의는 우리가 해 드리겠다고 말씀드렸더니 저승에 가면 사돈 어른께 걱정 들으신다며 극구 사양하셨다.
수의가 완성되어 찾아오던 날 어머니는 인생의 덧없음을 노래로 대신하고 계셨다. 늘 내게는 놀림감이었던 어머니의 노래가 그 날은 진지하게 내 가슴을 파고 들었다.
서글프고 심란하실 어머니의 마음을 어떻게라도 위로해 드릴 수 없음이 안타까웠다. 사후에 후회하지 않을 딸이 되자는 결심만을 굳힐 뿐이었다. 지금은 미국에 있는 오빠가 어머니를 모시는데 오빠 따라 나서시면서도 수의는 얼마나 알뜰히 챙기시던지 가슴이 싸~하니 아렸다.
언젠가는 내게도 닥칠 그 날을 대비해서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둬야겠다. 그 때 어머니의 막막했을 심정도 충분히 헤아려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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