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분없는 전쟁이라는 전 세계적인 비난 속에 마침내 미국의 이라크 공격이 시작되었다.
최신 첨단 무기를 동원한 미국과 영국 연합군은 최대한 속전속결로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 그 어느 때보다 엄청난 양의 폭탄을 이라크 전역에 쏟아 붇고 있다.
전쟁은 그 규모와 관계없이 귀중한 인명과 재산을 파괴하고 인간과 자연에 대한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우리에게 이번 전쟁은 더 이상 남의 일만은 아니다. 더구나 이라크와 더불어 「악의 축」으로 지목된 북한이 미국에 대항하는 결사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세계 어느 지역보다 이라크 전쟁이 미칠 후풍이 강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미국의 이번 전쟁은 무엇을 얻기 위한 것이며 전쟁의 결과는 어떻게 될 것인가?
미국의 전쟁목적은 대체로 두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첫째는 안정된 석유 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이라크는 세계 제2의 석유자원 보유국가이다. 미국은 이라크에 친미적인 정권을 수립하고 자국 석유회사들의 이라크 투자를 보장함으로써 석유수급과 국제 유가 안정을 도모할 수 있다.
둘째는 중동지역에 정치적 교두보를 확보하는 것이다. 중동분쟁에 있어서 이스라엘에 대한 일방적인 지원으로 무슬림 근본주의로부터 테러위협에 직면하고 있는 미국은 중동지역에 대한 정치적 세력확대를 통하여 지역패권을 구축하고 테러 위협을 제거하려 하고 있다.
이러한 미국의 전쟁 의도가 얼마나 달성될 수 있을 지는 아직 미지수다. 한편 미국의 의도 여부와 관계없이 이번 전쟁이 초래할 파장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첫째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무력화와 유엔권위의 실추이다. 이번 전쟁을 정당화시키기 위해서 미국은 지난 3개월 동안 유엔외교에 총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안보리 이사국과 우방들을 설득하는데 실패한 미국은 영국의 부분적인 지원을 받아 단독적인 전쟁을 감행함으로써 유엔 안보리의 권위와 능력을 무력화시키고 말았다. 이제 국가들은 자국의 안전을 유엔에 의존하지 않고 자력구제의 원칙으로 돌아갈 것이다. 군사력과 힘에 의존한 패권적 질서의 도래가 예견되고 있는 것이다.
둘째는 전세계적인 반미감정의 실체화이다. 미국이 비록 자국의 안전을 위한다는 명목을 내세우고 있지만 이라크의 테러지원 여부에 대한 확실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유엔조차 무시하는 미국의 패권적 행동은 유럽과 아시아 시민운동 세력을 자극하여 반미감정은 이번 전쟁을 계기로 이슬람국가를 넘어 전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미국의 안보는 더욱 위협받고 있으며 그럴수록 미국의 군사적 대응도 점차 거칠어질 것이다.
이 전쟁은 결코 평화의 이름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 전쟁의 상처와 후유증은 지속될 것이며 세계평화는 더욱 멀어지고 있다.
21세기 벽두를 피로 물들인 첨단과학 전쟁을 바라보면서 인간의 과학적 진보와 지식이 문명과 생명파괴에 동원되는 현실을 목도하고 있다. 이슬람국가에 대한 세계 최대 기독교 강국의 공격은 자칫 이번 전쟁을 「문명 충돌론」의 어두운 시나리오로 몰고 가려는 세력에게 힘을 실어줄 수 있다.
절대 평화와 정의를 추구하는 가톨릭정신 속에서 이제 우리는 이번 전쟁이 인류에게 던져주는 심각한 위기들을 성찰하고 민족과 종교간의 분열을 극복하고 하느님의 세계가 계도하는 세계평화를 실현하는 방안들을 갈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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