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우리네 할머니와 어머니들은 이름없는 삶을 사셨다.
결혼과 함께 귀중한 이름들은 묻히고 『○○댁』으로 모두들 통했다고들 한다. 세대가 바뀐 지금에도 여자의 이름 부재에는 큰 변화가 없는 것 같다. 부모님이 애써 지어주신 이름이나 많은 돈을 들여가며 작명가를 찾아가서 지은 이름이나 소중한 건 마찬가지다.
이름이란 얼마나 소중한가. 들판에 아무렇게나 피어 있는 작은 풀꽃도 그 이름을 갖지 않았던가! 그렇게 뜻깊고 귀중한 이름을 유독 남자들만이 평생을 간직할 수 있다는 건 부럽다기보다 억울한 생각이 든다.
그토록 정답게 불리워지던 이름들이 결혼과 함께 묻혀버리고 『여보』, 『당신』 아니면 심하게는 『밥쟁이』로 불리워지기까지 하는 서글픔을 감수하면서도 자기의 이름을 찾으려고도 않는 그 착한(?) 저의는 어디에 있는 것인지 자못 궁금하다.
어떤 분이 용무가 있어서 엄마의 이름을 대며 몇 집에 전화를 해봤는데 망설임없이 단번에 엄마를 바꿔주는 집은 우리 집 뿐이더라며 그 비결을 물어온다.
나는 서슴치 않고 이렇게 대답했다. 『남편이 술만 취했다하면 내 이름을 불러대니까 아이들이 귀에 익어서 그럽니다』라고. 그 순간이 자랑스러웠다. 남편 뿐이 아니라 누구라도 내 이름을 불러주는 그 순간이 비길 데 없이 흐뭇하고 행복하다.
내 마음이 이럴진대 여자들의 마음은 다 같으려니 싶어서 주위의 친분있는 분들의 이름을 자주 불러준다.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었다.
이름과 함께 묻혔던 지난 날의 아름다웠던 시간들이라도 추억된 걸까? 아이가 어릴 때는 『○○엄마입니다』라고 말하던 것을 이제는 당당하게 내 이름을 댄다. 거기에다 「글라라」란 예쁜 세례명까지 얻어서 주님의 딸이 된 영광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모든 여성들이 자기의 이름을 자랑스럽게 써서 한 송이의 꽃으로 거듭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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