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자들이 한국에 들어온 지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제 우리는 주말의 북적북적한 시장, 복잡한 역이나 터미널 혹은 일터에서 피부가 다른 이들, 다른 언어와 다른 종교를 가진 이들을 쉽게 마주칠 수 있고, 이주노동자들과 관련된 「산업연수제도」니, 「고용허가제도」니 하는 정책에 대한 얘기도 종종 접하며, 이들이 겪는 부당한 인권침해나 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분노하기도 하고, 이들에게 정당한 노동자의 권리가 주어져야 한다고 얘기하기도 한다.
이주노동자들 자신과 이들을 지원하는 시민사회단체들은 지난 10여년간, 「연수생」 또는 「불법체류자」라는 이름으로 살아온 이주노동자들에게 「노동자」로서 정당한 권리를 줄 것을 끊임없이 주장해왔고, 가톨릭 교회 역시 오랫동안 이주노동자들이 겪는 인권침해의 문제에 관심가져왔으며, 해외교포사목에 집중해오던 주교회의 이주사목위원회는 2003년의 중점사업을 「이주노동자에 대한 사목적 배려」로 정하기도 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 역시, 부족하나마 지난 3월 말, 드디어 산업연수제도를 전면 폐지하고 내년 1월부터 부족하나마 이주노동자들이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 고용허가제를 실시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그러나 이렇게 이주노동자들을, 우리 사회에서 필요로 하고 이미 함께 하고 있는 「노동자」로서 받아들이자는 외침과 움직임들이 늘 있어왔듯이, 산업연수제도를 유지하고 이주노동자들을 계속해서 「연수생」과 「불법체류자」의 그늘 아래 둠으로써 저임금의 노동력, 송출비리 등 많은 이득을 얻고 있는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이하 중기협) 등 기득권층의 반발도 늘 있어왔다.
그리고 언제나 현실 속에서 더 많은 권력을 가진 기득권층의 힘에 이주노동자의 인권을 바라는 목소리는 묻히고 유보되어온 것이 사실이다.
지난 10년 어느 때보다 이주노동자의 인권에 대한 관심과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지금이지만, 이번엔 과연 다를지, 이번에도 역시 같은 절차를 거치며 유보되고 마는 것이 아닌지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으며 벌써 연수제도 폐지와 고용허가 실시를 말하던 정부가 고용허가제 전면 실시 유보를 말하고 있는 등 그 우려는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중기협을 비롯한 기득권층은 이주노동자들이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찾을 수 있는 제도를 만들지 말아야 할 이유로, 이주노동자를 고용하는 데 드는 비용이 증가하고 중소기업을 근간으로 한 한국경제가 어려워 질 것이라는 것을 들고 있다.
경제적으로 충분히 안정이 된 후에 이주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해도 늦지 않다고 얘기하고 있다. 이들에게 이주노동자들의 인권은 경제적 성장은 바꿀 수 없는 것이며 경제적 성장을 위해 얼마든지 「유보」되어도 되는 것인 것이다.
그렇다면 되묻고 싶다. 10년이 지난 역사와 40만을 넘어선 이주노동자들, 이들이 겪어왔고 또 앞으로 예비된 수많은 인권침해 앞에서 이들의 권리는 언제까지 「유보」되어야 할 것인지, 함께 일할 사람이 필요해서 우리가 먼저 초대한 이들을 언제까지 「이주노동자」라는 이름만으로 분류해둘 것인지.
이주노동자들, 이들을 지원하고 함께 하는 시민, 사회단체들과 가톨릭 교회, 이주노동자들의 고통에 함께 아파하는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지금 논의되고 있는 「고용허가제」가, 또는 「노동허가제」가 이주노동자들이 귀한 인간으로 대우받고 살아가는 종착점이 아닌 시작점 그리고 이들이 우리 곁에 함께 살아가는 이로 받아들여지고, 또 우리를 그들이 받아들여 서로가 「이웃」이 되기 위한 첫 단추에 불과한 것임을.
그럼에도 그 시작이 이렇듯 쉽지 않은 것은 왜 일까. 혹시, 이주노동자, 우리 이웃의 인권과 경제성장 또는 한국사회의 이익을 맞바꿀 수 있다는 기득권층의 논리에 동의하고 있는 것인가.
이주노동자라는 이름을 떠나 모두가 귀하게 대접받는 세상에 대한 바람을 가지고 있다면 더욱 힘을 모아보자. 그리고 외쳐보자. 이제, 이미 오랜 기간 묵묵히 일해 온 이주노동자들을 이 사회가 합법적인 노동자로 인정하고 합당한 권리를 찾을 수 있도록 제도화하는 것밖에는 에둘러 갈 길이 없다고, 누군가의 인권 그리고 함께 살아가는 삶은 그 어떤 이득이나 성장과도 바꿀 수 없다고.
지난 10년간 기다려온 바람들, 이제는 열매 맺을 때도 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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