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이다. 겨우내 침묵하던 생명의 몸짓이 다시 분출되고 약동한다. 집 뜰에 목련이 피고 개나리 울타리가 그 색을 자랑하고 전국 각지의 벚꽃과 철쭉이 만발하여 자연은 생기가 더 한다.
조선조의 기틀을 세운 정도전은 삼봉집에서 「봄이란 봄의 출생이며, 여름은 봄의 성장, 가을은 봄의 성숙, 겨울은 봄의 수장(收藏)」이라고 했다. 봄철의 생명의 기운을 4계절과 자연 운행의 중심축으로 본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처럼 생명의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을 느끼는 봄에 우리네 살림살이는 생기가 없다. 길거리에는 축 처진 어깨에 힘없이 걸어가는 사람들이 많다.
어느 누구를 붙잡고 당신에게 삶의 기쁨과 희망이 있느냐고 물어도 왠지 요즘은 부정적인 응답이 많을 것 같다.
지금은 경제 위기 상황이다. 정치는 둘째치고 우선 사업이 힘들고 직장생활은 언제 퇴출될지 모르는 불안과 위기 속에 살아간다. 물가는 뛰고 실업률은 높아져 대학을 졸업해도 취업이 힘들고 그래서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때보다 더 어렵다고 야단이다.
또 교육의 붕괴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학교 교육이 말이 아니다. 교사들은 학생들을 보고 허탈해 하고 학생들은 학교 교육을 외면하고 있다.
그래서 너나 할 것 없이 자녀들에게 학원 과외를 시키고,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초.중.고생 할 것 없이 조기 유학 바람이 불고 있다. 생업을 위해 아빠는 이 땅에 남아 있고 아이와 엄마는 해외로 간다. 자녀 교육을 위해서 나는 희생해도 자녀들에게는 희망을 걸어보자는 생각에서 일 것이다.
가족은 흩어지고 그래서 불쌍한 「기러기 아빠」들이 많아지고 있다니 참 문제가 아닐수 없다.
국제사회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이다. 힘의 논리를 앞세운 미국.영국군의 일방적 이라크 침공과 전쟁 승리 선언, 중국의 사스 바이러스에 이어 미국.북한.중국이 한국을 배제하고 북경에서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한 3자회담을 갖는다고 하니 우리나라를 우습게 보는 것 같아 자존심이 상한다.
그러니 점차 세상살이에 냉소주의가 늘어날 수 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는가? 그러나 신앙적 관점에서는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으며, 희망을 이야기해야 한다.
예수가 십자가를 향해 가실 때 대제사장에게 잡히시고 억울한 누명과 빌라도의 불법적 재판과 온갖 조롱받으심과 십자가에 처형되실때 그를 따르던 제자들에게 희망이 있었는가? 없었다. 그냥 암담했다. 불의가 의를 이기고 죽음이 생명을 삼켰다. 메시아 소망으로 예수를 따랐으나 그 소망이 완전히 사라져 절망감으로 가득 찼다.
그래서 모두가 예수를 버리고 도망갔으며 다락방에 모여 문을 안으로 걸어 잠그고 불안과 염려 그리고 절망감에 휩싸여 있었다. 전혀 내일에 대한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어느 누구도 희망을 이야기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
십자가를 목격한 제자들에게 희망이 찾아온 것은 예수의 부활 사건이었다. 전혀 기대하지도 않았던 부활의 예수님이 절망 가운데 있는, 희망이 없는 그들에게 나타나셔서 평안을 주고 새로운 소망을 주었다.
부활은 모든 인간들에게 희망의 메시지이다. 부활은 절망을 소망으로, 불안을 평안으로 바꿔 놓는다. 오늘 우리가 처한 상황이 위기인데 어느 누가 희망을 말하겠는가?
그러나 부활 신앙은 희망을 준다. 2003년 예수부활은 이런 우리들에게 다시 한번 용기를 전해 주기 위해 왔다. 희망을 버리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감사하라는 뜻을 새삼 일깨워준 것이다.
예수부활대축일에서부터 성령강림대축일까지 50일간 이어지는 부활시기를 맞아 부활의 영광을 찬미하고 기쁘게 지내면서 국가와 민족, 그리고 개개인의 삶에 희망을 부어넣는 역사가 있기를 소망해보자.
아울러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평화가 온누리에 가득하기를 기원하는 한편 부활에서 새로운 희망을 발견, 우리 역시 새롭게 변화되어 말과 행동으로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해야 할 것이다.
또한 북한 핵문제가 조속히 해결, 한반도 평화와 민족 화해 일치가 앞당겨져 부활의 기쁜 소식이 널리 전해지도록 마음을 모아 하느님께 기도 드리자.
특히 예수 부활을 입으로만 고백할 것이 아니라 나눔과 섬김, 희생의 정신으로 사랑을 행동으로 옮긴다면 어렵고 가난한 이웃들의 고통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즉 남과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세상, 기쁨 뿐만 아니라 고통까지도 함께 나누는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는데 우리 신앙인들이 앞장서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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