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의 침략전쟁, 이라크전은 인명뿐만 아니라 귀중한 인류의 문화유산에 치명적인 손상을 주었다.
7천년 동안 살아 숨쉬던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미군의 무차별 폭격으로 파괴되었고 바그다드 국립박물관의 유물들은 약탈당했다. 이라크 전쟁은 후세인 정권뿐만 아니라 이라크의 찬란한 고대문명까지 파괴했다.
세계를 또 한 번 전쟁의 흉포함에 치를 떨게 한 사건이었으며 인류 모두에게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얼마나 안타까웠으면 미국의 한 고고학자는 뉴스 인터뷰에서 『이라크 전쟁으로 인해 모든 것이 다 잊혀져도 문화재 파괴는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겠는가? 뉴스를 보던 나는 이 인터뷰를 들으면서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몇 만 명의 목숨이 끊어졌고 이후 더 많은 사람들이 죽어갈텐데 문화재 파괴를 생각하면 그까짓 수 만 명의 목숨쯤은 잊어도 좋다는 것인가?
물론 잃어버린 문화유산에 대한 안타까움을 말하고자 한 것이겠지만, 그래서 너무나 「고고학자」다운 발언이었겠지만 여기서 나는 미국식 휴머니즘의 실체를 다시 한 번 확인한다.
포로 한 명을 구하기 위해 베트남 민중들을 수도 없이 죽여놓고 구출한 동료와 입을 맞추며 기쁨의 환성을 지르는 미국식 휴머니즘은 헐리우드 영화에 묻혀 살아온 우리에게는 결코 낯선 모습이 아니다.
이번에 보니 미국의 지성(知性)도 그런 것이었다. 「휴머니즘」도 「지성」도 「미국」 뒤에 서 있는 것, 그래서 또 극적(?)으로 구출된 열 아홉 살 어린 여전사는 영웅이 되어있지 않은가!
다행히 우리에게는 감옥 창살아래 시멘트 바닥을 뚫고 올라오는 잡초의 생명력에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시인이 있다. 머리가 깨진 내 아이보다 손가락을 다친 이웃집 아이를 위로할 줄 아는 할머니들이 있다. 다른 건 다 배워도 미국식 휴머니즘은 절대 배우지 말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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