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어린이 미사 때 「콩나물과 콩나무」 이야기를 들려준 적이 있다.
일년생 콩 줄기 식물을 「나무」로 표현하는 것이 어린이들한테는 마치 「쌀 나무」에서 쌀이 열리는 것처럼 생각하듯 잘못된 지식을 심어주는 것 같아 다소 걱정은 하면서도 여하튼, 받침 하나 차이지만 한쪽은 흙에 떨어져 모진 비바람과 뜨거운 뙤약볕을 이겨내고 백 배 열매를 맺는 콩나무가 되었지만, 허여멀겋게 호강하며 자란 콩나물은 살아있으되 생명력이 없는 식물이 되었다는 얘기를 해주었다.
그런데 이야기를 하다보니 어린이들 상상력으로는 콩을 물에 불려 싹을 틔워, 검정 보자기를 씌워 음지에서 콩나물을 키워낸다는 것을 못 알아듣는 듯해서 열심히 콩나물 재배법까지 설명을 하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숙주나물까지 이야기가 번지게 되었다. 콩에서 싹틔운 것이 콩나물, 그러면 숙주나물은 무엇에서 싹틔운 것일까? 아는 사람? 아무도 없었다. 어린이를 가르치는 청년 교사들까지도. 어? 이것 봐라? 일종의 오기를 부리듯 다음 시간 중고생들한테도, 청년들에게도 물어보았지만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난 아예 성서말씀은 뒤로 제켜둔 채로, 청년들에게는 어쩌면 서른 살이 다 되도록 녹두도 모르느냐…. 그래서 숙주나물을 일명 녹두채(綠豆菜)라고도 하고, 녹두를 갈아 빈대떡도 부치고, 녹두를 갈아 쑤어 만든 묵이 「탕평채」라고도 불리는 「청포묵」 아니냐 하면서 혼자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마라」, 「돈 없으면 집에 가서 빈대떡이나 부쳐먹지」라는 「빈대떡 신사」 노래까지 불러가며, 혼자 「마구 마구 오버한」 적이 있었다.
이렇게까지 입에서 침을 튀겨가며 어린이들, 젊은이들 앞에서 목소리를 높이게 된 데는 비단 「녹두 사건」 때문만은 아니었다.
지난 여름 중고생들을 데리고 철원 한탄강 지역으로 래프팅을 하러 갔을 때도, 재미 삼아 철원 지역의 역사적 배경 설명을 하면서, 마침 TV에서 방영되던 드라마 「태조 왕건」 이야기를 곁들여서 「궁예」 이야기며, 또 이 철원 지역이 6.25 한국전쟁 이전에는 38선 이북 지역이었는데 전쟁 후 휴전선이 그어지면서 남한 지역이 되었다란 설명을 하는데 젊은 학생들에게는 38선이 뭔지, 휴전선이 뭔지 도대체 구분을 못할 뿐더러 관심도 없는 듯 했다.
다만 철원 옛 「노동당사」를 답사하며 이곳이 몇 년 전 서태지의 「발해를 꿈꾸며」 뮤직 비디오 촬영장소라고 말해주자 거기에만 지대한 관심을 보이던 모습.
또 몇 명의 청년들과 북한산 등반을 위해 4.19 묘역 앞에 모였을 때, 지나가는 말로 4.19 혁명에 대해서 아는대로 이야기 해봐라하니까 전부 외면한 채 먼 산만 바라다보던 모습. 이런 모습들이 나에겐 상당한 충격이었다.
나름대로 이런 충격 앞에 답답함을 느끼고 있던 차에, 박노해 시인이 쓴 「오늘은 다르게」란 책을 읽다가 나와 똑같은 충격을 받은 저자의 글을 반갑게, 공감하는 마음으로 읽은 적이 있다.
박노해 시인이 어느 날 젊은 친구들과 전라도 음식점에 들어가게 되었단다. 한창 먹성 좋은 나이들인지라 쭈꾸미 볶음에 숙주나물, 꼬막 무침, 갓김치 등 반찬 접시가 금세 바닥이 났다. 그런데 추가로 주문하는 소리를 듣고 있자니 뭔가 이상하더란다.
『요 작은 오징어 3인분만 더 주세요』 『여기 흰 나물 한 접시하고 조개 무친 것두요』
저자는 설마 하면서 지금 우리가 먹고 있는 음식 재료들을 물어보았더니, 쭈꾸미는 오징어 새끼가 아니냐…. 아니다 꼴뚜기인 것 같다…. 숙주나물은 흰콩에서 나는 거 같다. 꼬막은 좀 못생긴 조개, 갓김치는 무 이파리로 담근 거라고 천연스레 대답하더란 것. 저자는 그때 새삼스런 충격을 느꼈다고 했다. 너무나 공감이 가는 이야기.
그 후로 난 못된 버릇(?) 하나가 생겼다. 이것도 젊은 사람들 눈에는 피곤하기 짝이 없는 시아버지 심통으로 보이겠지만. 성당 앞에 꾸며진 꽃꽂이 장식을 가리키며 오늘은 어떤 꽃이 장식되어 있는지 꽃 이름 맞추기. 그래도 아직까지 영 신통치가 않다. 장미나 카네이션 외에는 거의 이름을 아는 꽃이 없으니까. 우리 성당 구내에 심어진 나무 이름 다섯 가지 이상 맞추기. 횟집은 많이 다녀봐서 그런지 아는 거라고는 광어, 우럭 외에는 제대로 이름도 모르는, 그래서 밥상 위에 올라온 생선은 무조건 바닷고기든 민물고기든 「물고기」로 통칭해 부르는 생선 이름 알아내기. 그랬더니 어떤 학생은 반론을 내세운다.
『신부님 꼭 이름을 알아야만 먹을 수 있나요? 그렇게 피곤하게 살 필요 있어요?』
그래도 난 여전히 성당 앞 장식된 수선화를 보면서 신화 속 「나르시스」 이야기며, 「일곱 송이 수선화」 노래를 정성껏 불러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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