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과 5월은 일년 중 가장 생동감이 넘치는 계절이다. 만물은 겨울의 침묵을 털고 일어나 새로운 삶을 가꾸고 새 생명의 탄생을 준비한다. 설렘 속에 희망을 키워간다.
신앙 안에서 이 시기는 사순절에서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을 거쳐 부활시기로 이어지는 기간이다. 「부활」이 키워드다. 부활은 우리에게 전혀 새로운 삶이 올 것이라는 믿음과 희망을 안겨준다. 자연 속의 희망의 시기와 신앙 속의 희망의 시기가 겹치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현대사에서 우리는 이 시기에 여러 가지 큰 사건들을 경험했다. 그 중에서도 제주 4.3사건과 4월 학생혁명, 그리고 5.18 광주 민중항쟁은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거나 큰 고통과 슬픔을 겪은, 결코 잊혀질 수 없는 사건들이다.
특히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직전에 발생한 「제주 4.3사건」은 해방 이후 지금까지 사이에 한국전쟁 다음으로 인명 피해가 많았던 사건이다. 신고된 희생자 수만 해도 1만4000명이 넘는다. 그런데도 4월 학생혁명이나 광주항쟁이 법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그 의미가 정리되어 있는 데 비해 4.3사건은 아직 미완의 사건이다.
이 사건은 그 명칭에서 보듯이 지금도 그 성격이 명확히 규정되지 않고 있다. 관점에 따라 「4.3폭동」이나 「제주항쟁」 또는 「4.3항쟁」 등으로 불리어 왔으나 아직 통일된 의견은 없다. 사건 이후 40년 가까이 흐르는 동안 공식적인 진상 파악은 커녕 공개적인 논의조차도 금기시되었던 탓이다.
다행히 제주도민 등의 노력 끝에 2001년 1월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공포되었다.
이에 따라 구성된 정부 제주4 3사건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위원장 국무총리)가 2년 6개월간 조사를 실시, 지난 2일 「제주 4.3사건진상조사보고서」를 공개하기에 이르렀다. 55년만의 일이다.
사건의 원인과 주된 책임 소재에 대해서는 지금도 논란이 있다. 그리고 이 보고서는 아직 최종 보고서는 아니다. 위원회는 9월 28일까지 새로운 자료나 증언이 나타나면 추가 심의를 거쳐 보고서를 수정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으로 어떤 자료가 나타나든 제주의 무장 세력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양민이 무고하게, 아무 재판 절차도 거치지 않고 학살되었다는 사실에는 이제 이론의 여지가 없다.
진압 군경은 심지어 『가족 중에 한사람이라도 없으면 「도피자 가족」으로 분류, 그 부모와 형제 자매를 대신 죽이는 「대살(代殺)」을 자행하였다』(진상보고서 576쪽)고 한다. 변명할 수 없는 비인도적 범죄행위가 자행되었던 것이다. 보고서는 『무수히 많은 주민들이 대부분 국가공권력에 의해 희생되었음을 알려준다. 더욱이 10%를 상회하는 노약자에 대한 무차별 학살은 4.3사건을 진압한 국가공권력의 인권 유린 실태를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고 적고 있다.
일부에서는 사건의 본질은 공산세력의 무장폭동으로 발생한 사건이며, 다만 무장 세력을 토벌하는 과정에서 억울한 희생자가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러한 사실이 다수의 무고한 인명을 학살한 데 대한 면죄부가 되지는 못한다.
신앙인인 우리는 이제 이 사건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그렇게 많은 사람이 억울하게 살해되었다는 사실, 그러한 범죄가 국가 공권력에 의해 자의적으로 저질러졌다는 사실은 우리의 분노를 사기에 충분하다.
더구나 그 억울한 죽음들을 「불가피한 희생」으로 치부하려 한 데 대해서는 절망감마저 느낀다. 예수님은 그 희생자들을 지켜보시면서 당신이 십자가에 매달려 겪은 고통을 몇 번이고 다시 느끼시지 않았겠는가. 그렇지만 우리는 지금까지 무엇을 했는가.
우리가 주님의 부활을 기억하고 그 의미를 오늘에 되살리기를 원한다면 단순히 교회 안에서 치러지는 전례들을 충실히 따르고 주어진 기도문을 열심히 외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예수님이 죽으심으로써 얻고자 한 것은 무엇인가. 우리의 구원이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자신의 존재 자체까지 희생하셨다. 우리도 우리 자신만이 아닌, 남을 위해 전심전력으로 사랑을 실천해야 하지 않겠는가.
오늘은 5월 18일이다. 5.18기념재단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진실을 말하지 않고 과거를 기억하지 못한 불행한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문구가 올라 있다.
우리는 4.3이, 4월 혁명이, 광주 항쟁이 망각의 늪 속에 빠져 들도록 놓아두어서는 안 된다. 스러져간 넋들의 아픔을, 그들 가족의 슬픔과 고통을 내 아픔과 슬픔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 눈물 흘리며 기도해야 한다. 그 때 우리는 비로소 예수님과 함께 하고, 구원을 우리의 것으로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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