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이냐 「이상」(vision)이냐?
내가 경험해 본 요즘 젊은이들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우리가 옛날 학교 다닐 때 선생님들로부터 즐겨 들었던 「갈매기 조나단」이야기-『높이 나는 새가 더 멀리 난다』는, 이상을 크게 가지라는 이야기는 더 이상 요즘 젊은이들한테는 먹혀들지 않는 이야기 같다. 대신 『내일의 닭보다 지금 당장, 오늘 한 개의 달걀』을 선택하는 지극히 현실적인 가치관을 지닌 듯 싶다.
남들보다 더 높이 비상(飛上)하기 위해서는 군살도 빼야 하고 뼈 속까지 비워야 하는 고난을 감수 인내해야 할 것은 뻔한 일이고, 발 한번 붙일 틈 없이 하루 온종일 하늘에 떠 있어야 하는 그런 「고단한 삶」보다는 든든한 땅위에, 그것도 먹이 감이 풍부한 땅 위에 발 딛고 서있기를 원하는 것 같다.
우리한테는 조용필의 노래로 널리 알려진 「킬리만자로의 표범」. 원래는 헤밍웨이의 소설 「킬리만자로의 눈」 서문에 나와있다는 「킬리만자로의 표범」 이야기를 젊은이들에게 해줬다가 용기있는 젊은 학생으로부터 반론을 받은 적이 있다.
킬리만자로의 산 정상 위에는 얼어 죽어있는 표범 한 마리가 있는데, 그 표범은 왜 먹이 감이 풍부한 산기슭을 놔둔 채, 추위와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그 먼 산 정상까지 올라가 얼어죽었을까? 「높은 이상」에 대해서 말하려는 찰라, 용기있는(?) 어떤 학생이 나의 말꼬리를 자르고 나섰다.
자기는 고상한 이상도 좋지만, 추위와 죽음이 기다리는 산 정상보다는 그냥 먹이 감이 풍부한 산기슭을 어슬렁대는 승냥이로 사는 게 낫겠다고. 이런 학생의 반발에 누가 뭐라고 할 것인가? 오히려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고백할 줄 아는 그 용기에 찬사를 보내야 하는 것일까?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던 그 학생 뿐 아니라 요즘 젊은 학생들에게 앞으로 자신의 직업에 대해 질문을 던지면 나름대로는 미리 준비된(?), 똑소리 나는 현실적인 대답들을 한다. 자신의 취향에 맞지 않는 전공을 택할 바에야 자기가 「진실로 좋아하는 일」로 「밥벌이」(직업)를 할 수 있는 삶을 선택하겠노라고…. 자신이 정말로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그것으로 돈까지 벌 수 있다면 그게 행복한 삶 아니겠느냐는 그런 얘길 한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들이 미치도록 좋아하는 춤이나 노래(백댄서, 연예인) 사이버 게임(프로 게이머)을 직업으로 삼겠노라는 얘길 거침없이 한다. 글쎄 그것이 틀린 말은 아닌데…. 그러나 난 젊은 학생들에게 이런 얘길 들려주었다.
지난번에 한 번은 젊은 학생들을 모아놓고 「꿈, 이상, 비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뻔한 이야기지만, 사람은 누구나 꿈을 꾸는데 「꿈」(dream)은 덧없이 소멸될 수도 있는 일장춘몽(一場春夢)이 되기도 하지만, 꿈이 일단 「이상」(vision)이 되고 나면 어떤 어려움에도 결코 소멸되지 않는다.
그리고 「꿈」이란 것은 단순히 한 사람만을 사로잡는데 비해서 「비전」이란 것은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쳐 그와 유사한 이상을 갖게 하는 힘이 있다는 얘길 했었다. 그러면서 언뜻 생각나는 대로 「슈바이처의 삶」을 이야기했었다.
『너희가 자기가 정말로 좋아하는 일로 밥벌이를 삼는 것이 성공적 삶이라고 생각하는 데는 동의하지만, 너희가 춤과 컴퓨터 게임에 매료되듯이 슈바이처를 실로 매료시켰던 것은 신학공부였고 오르간 연주였다. 슈바이처는 자기가 진실로 미치도록 좋아하는 이 오르간 연주를 자신의 직업으로 삼을 수도 있었지만 그는 보다 더 큰 뜻, 「비전」을 가지고 의학공부를 뒤늦게 선택하여 의사가 되었고, 후에 「아프리카의 성자」가 되었다.
나는 너희들이 보다 높게 날았으면 좋겠다. 진실로 내가 좋아하는 일로 밥벌이를 할 수 있는 삶이 「성공적인 삶」이라고 믿고 싶겠지만, 그건 어쩌면 더 이상 하늘을 날기를 포기한 채 먹이 감을 쫓아 땅바닥을 기어다니는 「날개가 필요없는 갈매기」, 혹은 고고한 킬리만자로의 표범이 아니라, 산기슭을 어슬렁대는 승냥이로서의 「추락」일지도 모른다. 고리타분한 결론이겠지만 너희들이 부디 또 다른 갈매기 조나단, 또 다른 킬리만자로의 표범이었으면 좋겠다.
자신에게는 무척 고단한 삶이었지만 그를 바라보는 다른 이에게는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 한번쯤 하늘을 쳐다보게 만들고, 높은 산 정상을 동경하게 만든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그러나 이런 충고가 비단 젊은 청소년들에게만 해당되지는 않을 듯 싶다. 어른들도 마찬가지. 「이상」(vision)을 갖기엔 너무 늦어버린 나이라면, 그러면 「이상」이란 단어를 「관심」이란 단어로 바꿔서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나의 주된 「관심」은 무엇이고, 나는 그 어떤 것으로 삶을 지탱시켜 나가는지….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