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은 세계 환경의 날이었다. 이날 정부 주관의 환경의 날 기념행사에서 대통령 표창을 받기로 돼 있던 환경운동단체 관계자가 표창받기를 거부하고 행사에 불참했다. 행사장 밖에서는 환경운동단체 회원들이 「슬픈 환경의 날, 아 새만금!」이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침묵시위를 벌였다.
비슷한 시간에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는 환경.시민단체 인사들이 정부의 새만금 간척사업 중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주도적인 환경운동단체인 환경운동연합은 하루 전인 4일 백지 논평을 냈다. 녹색연합도 「세계 환경의 날, 더 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라는 제목만 적은 성명을 내놓았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날 환경의 날 행사에 참석하지 않았다. 환경운동연합은 노대통령이 수많은 공식 석상에서 단 한번도 환경정책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대통령이 물의 날과 지구의 날 행사는 물론 환경의 날 기념식에도 불참한 사실을 들면서 『단편적인 사례는 노무현 정부에서 환경이 차지하는 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노대통령은 이날 같은 시간에 청와대에서 전국 시장.군수.구청장 초청 특강 중에 새만금사업에 대해 언급하면서 계속 시행이라는 정부 방침을 재확인했다. 노대통령과 환경운동단체들간에 빚어지고 있는 갈등이 이날도 계속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갈등의 가장 중심에 새만금이 있다.
새만금사업이란 전라북도 군산에서 앞바다의 섬들을 연결해 부안까지 방조제를 축조하고, 그 안의 갯벌과 바다를 간척해 농지와 담수호를 건설하려는 사업이다. 총 개발 면적이 4만100ha로, 새로 조성될 토지가 28300ha, 호수 면적이 11800ha다. 개발면적은 여의도의 140배 크기이고, 길이 33km를 넘는 방조제는 세계 최장이 될 것이라고 한다.
시행자인 농업기반공사는 이 사업으로 국토가 확장되고, 연간 14만톤의 쌀을 증산하고, 연간 10억톤의 수자원을 확보하며, 동진.만경강 유역의 상습침수지역이 수해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 막대한 예산을 들여, 더구나 세계적으로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2만ha의 귀중한 갯벌을 망쳐가면서까지 이 같은 대규모 간척사업을 반드시 벌여야 할 이유가 과연 있는가 하는 점이다.
우선, 이 사업의 제일 중요한 목표인 대규모 농지조성의 필요성이 사라지고 있다. 김대중정부는 2001년 5월 수많은 논란을 뒤로 하고 새만금사업 강행을 결정했지만, 불과 4개월 후에 식량증산정책를 포기했다. 과잉생산과 수요 감소로 쌀이 남아도는데다 쌀 시장의 개방에 따른 불가피한 조치였다. 이어 벼 재배면적을 2005년까지 13만ha 축소하고, 올해부터는 휴경 농가에는 보상까지 해준다. 한편에서는 돈을 주며 농지를 줄이고, 다른 한편에서는 거액을 가져다 부어 농지를 조성하겠다는 해괴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담수호? 우리는 아직 시화호의 악몽을 잊지 못한다. 그리고 그 재앙 뒤에는 농림부와 농업기반공사의 전신인 농업진흥공사가 있었음을 기억하고 있다. 더 간단하게 말하자. 팔당호 하나의 수질을 유지하기 위해서 주변 지역 주민이 얼마나 많은 제약을 받고 있고, 당국은 얼마나 많은 돈을 쓰고 있는가. 그러고도 수질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그 몇 배 크기의 담수호를 만들어 맑은 물을 유지하며 농업용수와 생활용수로 사용할 수 있다고?
노대통령은 사업은 계속 하되 용지의 용도는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는 정치적 줄타기의 결과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농업용지 조성이라는 큰 목표 자체가 바뀐 이제, 따라서 앞으로 돈이 얼마나 더 들어갈지조차 알 수 없게 된 이제 와서까지 방조제는 일단 막고 보겠다면 그것은 억지가 아닐 수 없다. 사업의 방향이 바뀌는데 당장 무슨 명목으로 방조제 공사 속행의 예산을 집행하겠다는 것인가. 「불확정사업에 필요한 토지 조성」이라는 명목으로?
지금은 방조제 공사를 일단 중단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런 후에 사업의 목표를 다시 설정하고 그에 따라 방조제 건설의 속행 여부나 규모를 결정하는 것이 옳다. 또 목적에 따라 사업 주체도 바뀌어야 함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노태우정권이 전북의 표를 의식해 저지른 일을 김대중정부가 무리하게 고집하여 여기까지 온 일을 현정부가 뒤집기가 쉽지 않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전북의 개발 문제는 달리 풀어야 한다. 국민 다수가 반대하고 국회의원 다수가 유보를 주장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우리는 지금 개발의, 그것도 정치적 이해타산에 기반을 둔 개발의 시대를 넘어서야 하는 시점에 와있다. 후손에게는 생명의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명제가 왜 전세계적인 화두가 되어 있는지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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