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온통 세상은 난리법석, 아수라판 같습니다. 서울 한복판에서는 청계천 복원 공사로 상인들이 분통을 터트리고, 북쪽에서는 휴전선을 지켜주던 미군부대의 이동으로 뒤숭숭하고, 남쪽에서는 새만금 방조제와 방사능 핵폐기장 건설문제로 시끄럽습니다. 동쪽에서는 겨울올림픽 유치의 좌절로 뒤숭숭한 가운데, 남쪽과 다음 번 개최지 신청의 순번을 놓고 또 옥신각신하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건물 분양과 관련된 사건으로 정치인과 여러 직업인들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또 주5일 근무제 시행을 둘러싸고 재계와 노동계의 힘 겨루기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과 또 다른 선생님들, 그리고 교육부 관료들 사이의 끝이 없어 보이는 갈등과, 사이사이 은행원, 철도기관사, 콘테이너 운전기사들의 파업에 이어, 주유소의 파업까지 예고되고 있습니다.
거기다가 빚 때문에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아이들과 함께 자살할 수밖에 없었다는 가난한 어머니와, 자기가 가르친 학생을 납치한 학원장 이야기에, 어학연수 및 외국여행 등으로 북새통이라는 공항의 대비되는 모습은 정말 이 세상이 한마디로 자기밖에 생각하지 않고 미쳐 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 정도가 얼마나 심한지는 전임 대통령의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까지 노벨평화상을 받으려는 노욕 때문이 아니었나 하는 의심까지 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정말 자기나 자기편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누구도 믿어주지 않는 형국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한 외국인은 한국을 『신뢰도가 낮은 나라』라고 하였고, 그 때문에 IMF의 경제위기도 맞았으며, 신뢰도를 높이지 못하면 또 다른 위기가 올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앞뒤를 봐도 모두 깜깜한 것만 같은 혼돈의 한 복판에서, 저는 하느님을 생각합니다. 세상이 온통 어둠으로 가득할 때 「빛」을 만드시고, 「별」과 이것저것을 만드시며, 만드실 때마다 「보시고 좋으셨던」 그 모습을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가톨릭 신자로서의 사명이 그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보기에 좋은」 일들을 하는 것!
그러면서 가끔씩 바보상자라는 TV에서 보며 미소짓게되는 「베스트 친절시민」의 모습 속에서, 당장 망할 것 같은 이 세상을 존재케 하는 지 모를 그 「의인 몇 사람들」이 모두 천주교 신자들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지금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서로가 서로를 더 믿을 수 있는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그 반대입니까?
단순한 저는 서로가 믿는 것이 불신하는 것보다 하느님 보시기에 「더 좋으시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온 세상이 지금보다 서로를 더 믿을 수 있도록 되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그 일에 천주교신자들이 앞장섰으면 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러한 생각이 교회 안에서도 그대로 적용되었으면 합니다. 성교회 역시 영적인 공동체인 동시에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는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각 교구에서 이미 시행했고 또 하고 있는 시노드(synod)의 핵심도 교회 공동체 안의 신뢰를 더 높여서 하느님 보시기에 더 기뻐하실 방안을 찾는 것일 것입니다. 주교와 사제가 서로 「더」 믿어주고, 사제와 수도자가 서로 「더」 믿어주며, 사제와 신자들이 「더」 믿어주고, 수도자와 신자들도 「더」 믿어주며, 신자들끼리도 서로 서로 「더」 믿어줄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렇게 되면, 어둠에 있는 사람들이 가톨릭교회에서 비쳐나오는 신뢰의 빛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믿음의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남이 나를 믿어주면 고맙지만, 그 시작은 내가 먼저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내가 남에게 조금이라도 더 믿을 수 있는 사람으로 보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올 여름, 제가 있는 곳에서, 제 부모님과 아내와 아이들과, 성당과 직장과 직장 밖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믿을 수 있어 보이도록, 『내가 팥으로 콩죽을 쑤겠다고 해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너그럽게 봐줄 수 있도록, 주위 사람들에게 말 한마디 행동 하나를, 더 믿을 수 있게 하도록 애써보겠습니다. 그 후에 함께 할 사람을 찾아보겠습니다.
그것이 「논문으로 말하는 것이 직업인 제게」 온통 까맣게만 보이는 세상에서, 이 세상의 주인이신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일을 하는 「한 가지」 방식이겠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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