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순례란 말은 흔히 듣는 바이지만 새성당순례란 것은 처음 들어보는 말일 것이다. 건축가 8명, 신부 5명, 화가.조각가.섬유작가 등 43명의 성당 만드는 전문인력이 지난 7월 유럽의 새성당들을 둘러보고 돌아왔다. 프랑스의 동부 롱샹성당으로부터 시작해서 로마의 순례지 성모대성당에 이르는 길고긴 여정이었다.
몽블랑 하얀산밑에 있는 유명한 앗시(Assy)성당 말고는 60년 이후 최근까지의 20개 가까운 성당이 선택되었는데 이탈리아 새성당 연구를 주목표로 삼았다. 우리성당 어떻게 잘 만들 것인가, 오직 그 일념으로 선진한 나라의 것을 배우러 간 것이었다. 이와같은 일은 그리스도교 2000년 역사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특별한 사건이 아닐까 싶었다.
기라성같은 유명한 건축가들의 작품들을 보았다. 그런데 흡족한 성당을 만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성당건축이란게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하는 것을 실감하였다. 이탈리아 성당들은 항상 문이 닫혀있었다. 문여는 시간이 있는 것인데 그것도 성당마다 같지않았다. 그 뜨거운 여름날에 몇시간씩 기다려야했다. 열었다가도 닫는 시간이 엄격하였는데 관리인이 퇴근해야하기 때문인가 싶었다. 한편 관광지 대성당들은 항상 열려있고 인산인해인 것이다.
성당은 저마다 독특하게 만들어져있었다. 건축가의 작품성이 두드러지게 돋보였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하였다. 성당이란 성당다움이 우선이 아닐까. 뜻(의미)과 쓸모와 아름다움이 공히 조화를 이루어야할 것이다. 용도와 미(美)만으로 성당이 되는 것이 아니다는 말이다. 쓸모 즉 전례에 대해서 이모저모 많이 계산이 되어있었다.
그러면서도 건축작품으로서의 창의성과 독특함에 보다 주안점이 있는 것으로 보였다. 차분하고 성스러운 미사전례의 현장이 되어야하지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것이었다.
성상 성화가 다시금 교회내에서 사라진 것을 보았다. 슬픈 일이었다. 더러 있기도 했으나 너무도 조잡하였다. 교황 바오로 6세의 『교회는 미술가를 부른다』라고 한 명연설이 허망하게 무너진 것이었다.
20세기를 마감하면서 지금의 교황님께서 왜 또다시 예술가들에게 교회로 돌아오라는 서한을 보냈는지 그 뜻을 알 듯 싶었다. 현대의 이탈리아 교회에는 예술의 향기가 사라지고 공허한 공간이 되어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관광지로 변한 옛날 성당은 미술품을 보려는 인파로 하루종일 붐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성당하고 다른점이 많이 눈에 들어왔다. 종탑이 따로 조형물로서 마당에 세워지고 있는 점, 세례당이 중요한 위치에 정성스레 만들어지고 있는 점, 주변 주택가 환경에 잘 어울리게 만들려고 크게 배려하고 있는점, 스테인드그라스가 거의 없다는 점, 장궤틀이 그 성당에 맞게 설계된다는 점, 돈 안들인 성당이 대부분이었다는 점, 등 우리가 배울 것이 많았다.
또 한가지 재미있는 현상은 천정에서 빛이 제대쪽으로 내려오게 설계된 성당이 대부분이라고 할만치 많았는데 알고보니 자기네 전통, 즉 로마의 판테온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우리의 전통에 대해서 얼만큼 애정을 가지고 있는가 반성해 볼 일이었다. 채광.음향 등에 과학적인 계산이 돋보였고 성가대석이 위층에 따로 있는데를 보지못하였다. 낭비없는 절제는 신선감을 준다. 전례를 행하는 사제와 참려하는 신도들 간의 친밀한 분위기를 느낄수 있었다. 그점은 모든 성당들이 하나같이 설계에서 주력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부채꼴 좌석배치를 선호하는 듯 싶었다.
순례기간 중에 우리는 현지성당에서 두차례의 주일미사를 보았고 두차례의 평일미사를 할 수 있었다. 힘든 여정이었지만 우리는 두차례의 저녁 좌담회를 가졌다.
성당이란 역시 미사예절을 통해서 그 됨됨이를 알 수가 있다는 것을 실감하였다. 앗시성당에 들렀을때는 마침 미사 끝에 청소년음악회가 열리고 있었다. 프랑스 당대 최고의 미술가들의 작품들이 집대성된 성당에서 아름다운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는 것은 참으로 감격적인 일이었다. 주일마다 하는 행사인지 특별행사인지는 알아보지 못했지만 성당에서 마을사람들과 함께하는 음악회는 특별한 감회가 있는 것이었다.
로마 한인성당에서의 주일미사를 끝으로 우리의 힘든 여정을 마감하였다. 한인성당은 한국적인 냄새도 있고 이른바 작품성이란 것이 눈에 띄지 않아서 편안하였다. 성가대석이 신자석과 구별이 없는 점이 좋게 보인데다 어찌나 그 성가가 우렁차고 좋은지 알고보니 음악전공하는 유학생들이라는 것이다. 역시 성당은 적당한 울림이 있어야 좋았다. 로마는 언제나 로마였다. 바티칸박물관. 베드로대성당은 언제나 인산인해였고 베르니니의 분수 주변에는 밤늦도록 젊은이들이 놀고 있었다.
피로가 풀리면 어떤 모양으로든 보고대회를 하기로 하였다. 귀중한 경험들을 한데 묶어 정리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아무쪼록 한국교회건축에 변화의 물꼬가 트였으면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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