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보도를 통해 경제특구에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인력과 호텔 서비스를 갖추고 비용전액을 이용자 부담으로 하는 병원을 설치할 예정이라는 정부당국자의 발표를 들었다. 방송은 우리나라의 부유층 상당수가 이미 해외에서 원정수술을 받고 있기 때문에 최고급 병원을 유치하면 국부유출도 막고 아시아의 부호들도 끌어들여 꿩 먹고 알 먹는다는 점을 빼놓지 않았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 잠깐 우리의 현실이 어디에 있는지 분간하기 쉽지 않다. 우리나라 의료보험은 보험이 아니라 할인제도이고 중병일수록 의료보험이 안 되는 기이한 구조라는 것도 최근까지 듣는 바다. 보통사람들의 의료서비스가 그러할진대 그 이하의 사람들은 어떤 상태에 놓여 있을까?
흔히 한 나라의 인권현실을 아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나라의 감옥을 가보는 것이라고 한다. 일제시대에도 사상범들은 감옥에서 자유롭게 집필했는데 김남주씨가 우유곽에다 못으로 시를 썼다던 일이 1980년대 한국의 감옥풍경이다.
그 후 감옥의 기본법이라고 할 수 있는 행형법(行刑法)이 개정되고 감옥도 상당부분 개선되었다. 어느 때보다 재소자의 인권침해에 대해 인권단체들의 감시의 눈초리가 매서워졌고, 몇 해 전에 출범한 국가인권위원회가 재소자문제를 주요업무로 취급하고 중요한 결정을 몇 차례 내놓았다. 다른 한편 재소자를 처단해야 할 사회악이 아니라 인권의 관점에서 접근하려는 감수성을 지닌 교정공무원들도 점차 늘어가고 있다.
하지만 교정시설에 대해 덕담을 나누기는 아직 이르다. 교정시설의 운영과 재소자의 기본적 권리와 처우에 관하여 국제사회가 제시하고 있는 「최저기준규칙」은 우리나라 재소자들에게는 꿈같은 소리이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치료문제만 보더라도 교도소내 의사가 담당해야 할 재소자수가 너무 많아 효과적인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
서울지방변호사회가 2002년도에 작성한 구금시설실태보고서에 따르면 어떤 교도소는 상당기간 의사가 아예 없었다. 이런 현실이니 중병에 걸려도 제때에 제대로 치료받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러다 죽음이 임박하게 되면 교정당국은 책임을 면하기 위하여 뒤늦게 형집행정지로 석방한다. 이렇게 해서 죽은 이가 바로 김혜자씨다. 수감중에 우연히 발견된 자궁암을 빨리 치료했더라면 달라질 수도 있었을 텐데 예산타령을 하며 아무런 치료조치를 취하지 않다가 말기에 귀가조치를 당한 후 34살의 나이로 운명을 달리했다. 물론 가난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돈과 권력이 있는 사람도 죽음의 운명이야 피할 수 없겠지만 이렇게 죽지는 않는다. 죄를 지어도 좀처럼 감옥에 가지 않을 것이고, 감옥에 들어가도 조만간 보석으로 나올 것이고, 중병에 걸려도 감옥에 방치되지 않고 유명병원에서 제 돈으로 제대로 치료를 받을 수 있다.
인권은 결국 돈도 권력도 갖지 못한 사람들의 것이다. 이들이 치료받기 위해서는 교도소 내 의료인력이 충분하게 확보되어야 하고, 응급시 교정시설 밖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게 의료보장을 해주어야 한다. 재소자를 위해 좀더 실질적인 병원교도소를 거점별로 설치한다면 더 좋을 것이다. 이러한 시스템이 가동되기 위해서는 과밀수용을 해소하고 교정인력을 대폭적으로 충원해야 한다. 재소자 대비 교정인력비율이나 재소자전용면적에 관해서는 우리나라가 매우 열악하다는 점은 거론할 필요도 없다.
재소자에 의료보험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도서벽지의 주민들도 의료시설 부족으로 사실상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죄지은 이에게 의료보험을 제공하는 것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재소자들은 유죄판결로 인하여 신체의 자유를 제한받고 일정한 노동의무를 강제당하는 이들이다. 징역형은 신체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의미지 건강과 생명의 상실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재소자를 생존조건 이하로 떨어지게 하거나 적나라한 교정폭력의 희생자로 압박해서는 안된다.
교도소에서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사망한 경우 국가는 결국 손해배상책임을 피할 수 없다. 이제는 이런 식의 어리석고 비인도적인 처우와 관행을 바꿔야 한다. 예방이 항상 좋다. 의료보험이 감옥 바깥 사람에게는 합리적인데 감옥 안의 사람들에게는 불합리할 까닭이 없다.
한국의 종교단체들은 감옥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할까? 인권침해를 야기할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여건들에 대해서는 체념해버리고 교정시설을 선교활동의 황금어장 정도로 간주하면서도 교정시설에서 뭔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착각하지 않을까? 필자는 종교단체의 명예를 빛내는 민영교도소사업에 뛰어들 것이 아니라 교도소 자체를 바꾸는 데에 힘을 쏟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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