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에 대한 기원은 미사에서 빠지지 않는다. 평화의 인사를 주고받을 때 아무리 우울한 마음이라도 잠시 위안을 얻게 된다. 우리가 그토록 바라는 평화는 대체 어떤 뜻일까? 평화는 우선 분쟁이 없는 상태이고, 근본적으로는 분쟁의 원인도 없는 상태라 할 수 있다. 국가간의 관계뿐만 아니라 개인간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라크에 전투병을 파견해달라는 미국의 요구로 온 나라가 다시 들끓고 있다. 국제법적으로 부시와 그 추종자들이 오히려 전범재판을 받아야 할 정도로 침략전쟁이라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는데도 한국정부는 말려들어가고 있다. 정부는 최근 전투병을 보내고도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리지 않는 고단수를 궁리하고 있다. 그렇게 좋은 길은 하느님도 알지 못할 것이다. 하느님도 악을 선으로 바꿀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라크에 파병하면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도 있다. 모리행위는 도덕적으로 수치스러운 일이고, 이른바 국익이라는 것도 계산착오일 것이다. 한술 더 떠 파병문제를 필두로 국회정보위에서 시민의 자유를 광범위하게 제한하는 테러방지법 제정을 재추진하고 있다. 냉소적으로 말해서 전투병 파병조치가 실제로 테러를 자초하는 짓이므로 이야말로 테러방지법이 필요할지 모르겠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평화를 추구하는 일은 어렵게만 보인다. 유례없는 군대와 무기로 대치하고 있는 한반도에서 평화를 추구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대결을 추구하는 현실주의자들은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에 대비하라』고 말해왔다.
이에 따라 남한은 천문학적인 재원을 신무기 도입과 군사력 증강에 쏟아 부었고 다른 OECD국가들에 비해 교육 복지 의료 인프라에서는 매우 열악한 실정이다. 경제적 여력에서 우리와는 상대가 되지 않는 북한은 어떻겠는가?
북한도 체제유지의사를 포기하지 않기 때문에 남한이 했던 방식과 유사하게 군비경쟁에 나섰다. 그러나 북한은 남한과 재래식 군비경쟁을 지속하는 것은 경제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급기야 재래식 무기 대신에 편법으로 대량살상무기로 무장하고 이어 핵개발에 나서고 있다. 즉 더 큰 위협으로 되돌아온 것이다.
「평화를 원하거든 평화를 추구하라」 평화는 직접적으로 추구하는 경우에도 얻기 어려운데 상대의 적대감을 부추기면서 부수입으로 평화를 얻을 수 있다면 그것은 기적이다. 경쟁이 상호발전에 좋다는 이야기는 전쟁과 평화의 문제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공도동망의 지름길이다. 남북당국자간의 군축노력과 남한에 의한 대북경제지원만이 한반도 평화를 직접적으로 촉진할 것이다. 이 정부 하에서 가시적인 군축조치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평화는 평화를 선택함으로써만 얻어진다. 우리 현대사 백년은 청일전쟁, 러일전쟁, 일제강점으로 얼룩져 있고, 해방 이후에는 남북분단과 치유할 수 없는 동족간의 전쟁을 겪었으며, 그것도 모자라 베트남에, 걸프에, 이라크에 군대를 보냈다. 이러한 전쟁에서 많은 사람들이 무참하게 학살되었고,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한국전쟁 전후에 저질러진 민간인 학살과 관련하여 최근 여러 유족단체에서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특별법 제정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필자는 얼마 전 「평화박물관」 건립추진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다. 사실 우리는 여러 가지 전쟁기념물을 갖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걸출(?)한 것이 용산의 「전쟁기념관」이다. 무기전시장을 방불케 하는 그 곳을 보고 평화의 씨앗을 키우는 어린이가 있다면 특이한 경우일 것이다. 전쟁기념관은 불타는 적개심을 주입하여 앞으로 있을 법한 전쟁에서 필승을 거두어야 한다는 투지배양처로 여겨진다. 평화를 추구하고 증진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 그리고 전쟁의 승리를 추구하는 것이다.
「평화박물관」 추진위원회에 따르면 2000년 여름 베트남에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학살 의혹이 제기되고 민간단체들이 베트남에 대해 사죄운동을 벌이고 있을 때,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던 문명금, 김옥주 두 할머니께서 8000만원을 희사하였다. 수십 수백억이 부패의 증거금으로 횡행하는 시대에 8000만원은 돈도 아닐 것이다.
그러나 전쟁의 상처를 안고 살아온 두 할머니의 삶이 담긴 그 돈을 사용하는 대신에 더 이상 전쟁 피해자가 나와서는 안 된다는 할머니들의 뜻을 받들어 평화박물관을 짓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추진위원회는 전쟁의 아픔을 겪은 분, 평화를 바라는 분들이 동참해 주기를 호소하고 있다. 분노와 적개심을 재생산하는 대신에 평화를 확산하는 행동을 직접 취해야 할 때이다. 감히 평화를 선택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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