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추적 늦가을 비가 거리의 은행잎을 적시던 11월 8일 토요일 저녁. 친구 연인 가족끼리 주말 저녁을 보내려는 인파가 가득한 대학로 중심가에 김수환 추기경이 모습을 드러냈다.
다소 빗줄기가 잦아들긴 했으나 여전히 머리에 물기를 머금게 하는 가는 비를 맞으면서 김추기경은 「생명 31 생명, 하나 더…!」 어깨 띠를 두른 채 마니피캇 어린이합창단의 손을 잡고 주교회의 가정사목위원회 위원장 이기헌 주교 생명 31 홍보대사들과 함께 대학로 번화가를 걸었다.
이미 어두움이 내려진 거리에서 플래카드나 피켓 하나 없이 어깨띠만으로 「생명」이라는 글자가 두드러지기에는 다소 역부족이었으나 가장 인파가 붐비는 샘터사 건물 앞에서부터 동숭아트센터 등을 지나 마로니에 공원까지 15분여 동안 추기경은 식당, 주점에 앉아 있거나 연극관람을 마치고 나오는 젊은이들 시선을 받으며 발걸음을 옮겨갔다.
팔순 연륜의 김추기경이 갖가지 소음, 반생명적 요소가 가득한 도심 한복판에서 「생명」의 소중함을 걸으면서 몸으로 드러내 보인 것은 일면 죽음의 문화에 대항해야 하는 교회의 임무를 대변하는 장면으로 비춰졌다. 행진을 마치고 마로니에 공원에 도착한 김추기경은 인사말을 요청받은 자리에서 조용하면서도 단호한 어조로 자살 저출산 경향 등 최근 한국의 생명경시 풍조에 대한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예정에 없던 순서였음에도 거침없이 이어지는 발언에서 평소의 우려 걱정이 느껴졌다.
이날 주교회의가 생명 문화 의식을 넓히기 위해 젊음의 거리를 직접 찾아 나선 것은 「전향적」 이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대학로 구석구석을 걸었다」고 할만큼 이례적인 김추기경의 대학로 거리 행진은 교회내외 생명 운동 참여자들에게 큰 위로가 됐을 법하다.
생명의 보루를 자처하는 교회가 그에 대한 목소리를 드러내고 진작시키는 역할은 「복음선포를 위한 매스컴의 선용」에 대한 입장처럼 골방에서 귓속말로 전하는 차원을 벗어나 지붕 위에서 선포할 수 있는, 보다 전향적인 자세여야 할 것 같다. 자살이 교통사고사를 앞선다는 작금의 한국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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