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선택된 백성으로서 성직자를 제외한 모든 신자, 즉 성세성사를 통해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고 그리스도의 사제직, 예언직, 왕직에 참여하여 그리스도의 백성으로서 사명을 완수하는 신자」라고 정의하고 있다.
따라서 평신도는 『하느님 아버지의 영광을 위해 그리스도 왕국을 전세계에 펴고 모든 사람을 구원에 참여케 하며, 또한 그들을 통해 전세계를 그리스도에게로 향하게』 사도직을 부여 받았다(평신도 교령 2항).
이처럼 『평신도는 그들 나름대로 사제요 예언자요 왕이신 그리스도의 삼중 사명에 참여한다』(평신도 그리스도인 제1장)고 하면서 평신도 위상에 교회가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지만 실상 많은 평신도들이 이러한 자신의 신원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
오래 전부터 교회가 세속에서 살아 남으려면 평신도가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수없이 말해 왔다. 그렇다면 과연 지금의 평신도의 위상은 어떤가. 옛날에 비해 평신도 전문가의 교회 활동 참여는 많아졌지만 아직도 그 수가 미약하고, 많은 부분에 있어서는 평신도의 적극적인 참여가 아쉬운 실정이다.
지금까지 열렸던 여러 교구의 시노드에서도 지적됐듯이 교회가 쇄신되고 발전하려면 성직자, 수도자와 함께 하느님 백성의 대다수인 평신도의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교회 참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전통적인 사회 분위기 영향을 받아서인지 아직까지도 본당운영에 있어서 보조적인 역할에 머무르고 있는 실정이다.
교회에 열심하고 교회 활동에 적극 참여한다고는 하지만 대부분 신심, 봉사활동이다. 성직자의 고유 직무를 제외한 모든 부분에 있어서 평신도의 참여가 필요하지만 이처럼 소극적인 것은 단지 평신도 스스로 자신감이 부족해서 일까, 아니면 여전히 극복되지 못하고 있는 성직자 중심주의적 사고방식 때문일까.
이렇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평신도 사도직에 대한 인식부족과 소명에 대한 자각 부족도 한 원인이 될 수 있지만, 평신도 스스로 사제나 수도자들에게 의존하는 소극적인 태도에 젖어 있다는 것이다.
교회 역시 평신도 각자가 갖고 있는 전문 능력을 필요로 하고 참여해 주길 기다리고 있다. 따라서 성직자와 평신도는 사목 하는자와 사목 대상자가 아닌 함께 운명을 같이 하는 하나의 몸체로 깨닫고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면서 각자의 위상에 맞는 일에 적극 참여하고, 또한 참여하도록 만들어 주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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