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전례력으로 한해를 마무리하는 마지막 주일인 「그리스도왕대축일」부터 한주간을 「성서주간」으로 정해 성서에 대한 신자들의 관심을 촉구한다.
「성서」는 우리 신앙의 근거이다. 교회는 「성서」와 「성전(聖傳)」을 가톨릭신앙의 두가지 바탕이라고 가르친다. 성서는 「하느님의 말씀」이다. 그 주제는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가없는 사랑이다. 구약과 신약시대를 통털어 지속되고 있는, 그리스도 예수를 통한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의 역사(役事)를 기록한 것이 성서다.
성서가 어느 시대에, 어떠한 방법으로 쓰여졌는지, 나아가 해석을 둘러싼 신학적 문화적 역사학적 논의는 여기서 중요하지 않다. 「성서」가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것은 신앙, 곧 믿음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다. 이러한 믿음은 성서를 읽고 묵상하고, 체험하면 할수록 깊이를 더한다.
오늘 우리는 1985년 「매일 성서를 읽자」라는 모토를 내걸고 시작된 성서주간의 설정 의미를 되돌아보면서 「매일 성서읽기」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자 한다.
성서, 곧 하느님의 말씀은 교회 공동체를 자라게 하고 살찌우는 힘을 갖고 있다. 지난 2001년 성서주간 담화에서 한국교회는 『누구나 하루 세끼 밥을 먹어 육신의 목숨을 기르듯이, 우리 모두 먹고 살라고 내어주시는 성서말씀을 날마다 정성된 마음으로 읽고 묵상하며 살자』고 강조했다.
이런 의미에서 성서, 곧 하느님의 말씀은 믿는 이들에겐 마치 매일 먹는 「밥」과도 같은 것이다. 양식을 통해 육신을 살찌우듯이 말씀을 먹고 영혼과 우리의 신앙을 살찌워야 한다.
오늘날 한국교회 성서사도직의 발전은 예전에 비할 바가 못된다. 성서모임도 매우 다양하게 활동중이다. 그만큼 선택의 폭도 넓어지고, 성서를 공부하기 좋은 조건이다. 성서는 곧 생활에 녹아나야 한다. 「성서의 생활화」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러나 이에 앞서 「성서를 읽는 것」이 먼저가 아닐까. 성서를 가까이 두고 조금씩이라도 매일 읽는 것이 우선이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했다. 곁에 두고 만족하지 말고 하루 세 번, 두 번, 한 번이라도 성서를 펴들고 읽어보자. 읽는 사람은 다 달라도, 성서말씀은 모두에게 다른 감흥으로 다가온다. 이게 「성서의 신비」가 아니겠는가.
하느님 구원의 말씀도, 준비하고 기다리는 이에게 찾아온다. 마치 가랑비에 입은 옷이 젖어들듯이 그렇게 우리 삶을 변화시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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