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
저는 지금 당신의 경작지 앞에
서있습니다.
지난 수많은 날들을
보이지 않는 손길로 감싸안으시고
끊임없이 불어 넣으신
따뜻한 훈김으로
줄기의 머리에 수없는 알곡을
마침내 매달아 놓으셨습니다.
하나로 열을 지으신 기적을
여전히 펴시고 계십니다.
참으로 가슴이 부실 뿐입니다.
부끄러운 제 몸처럼
알곡들이 수줍게 몸을 부비어
감사의 기도를 올립니다.
당신의 은혜에 혼미해져
시간의 흐름도 잊고 서있었습니다.
바람이 산산해지고 있습니다.
어느새 저물녘이라서 그런가요
비로소 일손을 맺고 돌아가는
사람들의 등허리도
이러이 산산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걱정말라 바람이 전합니다.
경작지에 가득한
구수한 알곡의 냄새를
눈물 서리게 그렇게 전합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돌아가서
오늘의 시름을 털어내고
또다시 맞이할 감사한 내일을 위해
씻어 정갈해진 후
당신 품에 조촐한 안온의 휴식을
맡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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